산업 생활

[식품업계 멍키바를 건너라] 포장 거품 빼고 과자량 늘리고… 제과업계 파격시도로 매출 쑥쑥

<3> 역발상 전략이 시장 판도 바꿨다


오리온 '포카칩' 가격 묶고 용량은 10%나 대폭 늘려

작년 매출 1,513억 사상최대… 경쟁사들 증량 동참 이끌어

맥도날드 취향별 재료 선택

롯데리아 모짜렐라햄버거 등 '한끼 해결' 패스트푸드 아닌

건강·이색 메뉴로 인기몰이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늘리면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위기에 빠진 제과업계를 살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7월 말 서울 문배동 오리온 본사 회의실.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이 주재한 임직원회의에서 연신 갑론을박이 오갔다. 가격 인상 없이 제품 용량을 늘리자는 허 부회장의 파격적인 제안에 실무급 직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제과업계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증량은 누가 봐도 무리수였다. 그로부터 한달 후 오리온은 대표제품인 '포카칩' 가격을 동결한 채 용량을 10% 늘리는 모험에 나섰다. 소비자는 150원가량 가격 인하 혜택을 봤지만 오리온은 약 40억원을 부담해야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증량 이후 포카칩은 전년보다 20% 가까이 매출이 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상식을 넘어선 역발상 전략이 식품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제과업계는 가격 인상 없는 증량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한편 패스트푸드 업계는 간편하게 한끼를 해결하는 메뉴가 아닌 건강식과 이색 메뉴로 눈을 돌리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 2014년 11월부터 '착한 포장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겉만 빵빵한 질소과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포장재 규격을 축소하고 '마켓오 리얼브라우니' '눈을감자' '왕고래밥' 등 일부 제품의 용량을 늘렸다. 이듬해 3월에는 포장재 잉크 사용량을 연간 약 88톤까지 줄이는 포장재 개선작업에도 돌입했다. 지난해 9월에 단행한 포카칩 증량은 오리온의 승부수였다. 국내 1위 스낵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장 매출이 급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카칩은 증량 이후 매출이 오히려 늘어 지난해 스낵 제품으로는 사상 최대인 1,513억원을 달성했다. 오리온은 이후에도 '초코파이' '뉴팝' '고래밥' 등 10개 제품에 연이어 증량을 실시했다. 강기명 오리온 마케팅총괄이사는 "포카칩과 초코파이라는 오리온의 대표 브랜드 2종을 증량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다"라며 "좋은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 고객 신뢰에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의 증량 프로젝트가 침체된 제과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자 경쟁사들도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꼬깔콘'의 포장공간 비율을 기존 18%에서 16%로 줄이고 '찰떡파이'도 종이포장재의 공간을 12.4%에서 7.1%로 줄였다. 포장은 큰데 막상 개봉하면 제품이 초라하게 들어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지난해 말부터는 대대적인 증량 작업에도 뛰어들었다. '롯데 초코파이 개당 중량을 35g에서 39g으로 11.4% 늘렸고 '롯데 자일리톨껌'도 97g에서 108g으로 용량을 키웠다. 이 중 롯데 초코파이는 단순히 용량만 늘리는 데서 나아가 주원료인 초콜릿과 마시멜로의 함량을 기존보다 높이는 등 제품 자체를 새로 개발했다.

지난해 '허니버터칩' 돌풍을 일으킨 해태제과도 '구운 양파'와 '구운 인절미' '구운 오징어' 등 5개 제품의 용량을 20~25% 늘리며 증량 마케팅에 동참했다. 과거에는 제과업계가 소비자의 눈을 피해 용량을 줄이는 편법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가격을 그대로 두고 용량을 늘리는 역발상 마케팅이 시장의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증량이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도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올 1월에는 롯데칠성음료도 대표 제품 '칠성사이다'의 페트 제품을 가격 인상 없이 용량만 500㎖에서 600㎖로 바꿔 출시하는 등 증량 마케팅이 음료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계는 건강식과 이색 메뉴를 앞세워 대대적인 변신에 나섰다. 맥도날드가 지난해 선보인 수제버거 전문매장 '시그니처버거'가 대표적이다. 시그니처버거는 20여종의 프리미엄 식재료를 고객이 직접 고르면 전담 셰프가 조리해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메뉴다. 천편일률적인 햄버거가 아닌 입맛과 취향에 따라 재료를 선택할 수 있어 젊은 세대는 물론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인기다. '건강하고 신선한 햄버거'를 모토로 내건 시그니처버거 매장은 지난해 8월 서울 신촌점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부산에도 진출하며 30곳으로 늘었다.

롯데리아는 이색 메뉴를 잇따라 선보이며 2030세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모짜렐라인더버거'는 출시 첫날에만도 단일 제품으로 최대인 170만개가 팔렸다. 이탈리아 남부 콘파냐의 자연산 치즈를 듬뿍 넣어 기존 햄버거의 개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짬뽕라면의 인기를 반영해 햄버거와 짬뽕을 접목한 '마짬버거'까지 내놓는 등 연일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과업계의 증량 프로젝트와 패스트푸드 업계의 차별화 전략은 경기불황과 내수침체에도 식품업계가 얼마든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라며 "과거 단기적 마케팅에 주력했던 식품업계가 기존의 마케팅 전략을 뜯어고치고 있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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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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