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에는 판타지가 있다. 때론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때론 현실보다 더 적나라해 낯선 이야기가. 뭐가 됐든 '뻔하지 않은 것'을 기대하며 관객은 공연장을 찾는다. 독특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와 캐릭터 모두 평면적인 수준에 그친 뮤지컬 '투란도트'가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다.
투란도트(사진)는 '수수께끼로 청혼자를 모두 죽이는 공주 투란도트가 용감한 왕자 칼라프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동명 오페라의 줄거리를 토대로 만든 창작뮤지컬이다. 대구시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공동제작한 투란도트는 무려 6년간 대구를 기반으로 작품 개발·제작·공연을 거친 뒤 서울에 입성했다는 점 때문에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뚜껑을 열고 보니 미덕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보인다. 극 초반 중독성 강한 넘버 '투란도트'와 물속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몽환적인 안무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진실한 사랑·순수한 용기·따뜻한 마음 등 도덕과 바름을 강조하는 대사와 장면이 반복되며 이야기는 '진부한 교훈극'으로 변해간다. "하찮고 미천한 자라 해도 더 큰 것이 있으니 그것은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순수한 용기다", "사람을 향한 마음엔 높고 낮음이 없다"… 끝없는 '오늘의 말씀' 행렬에 작품도, 대사를 읊는 캐릭터도 개성과 공감을 잃고 멀어져간다. 칼라프가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세 번의 장면에서 그 어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일 듯싶다. 이야기의 이음새도 빈약하다. 잃어버린 길을 찾기 위해 도전하듯 투란도트의 유희에 뛰어든 칼라프가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을 운운한다. 목숨 걸고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칼라프의 모습 역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콧대 높은 여자를 이기고야 말겠다는 도전 같이 비친다. 개연성이 떨어지니 몰입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투란도트·오직 나만이 등 중독성 있는 넘버가 인상적이지만, 이와 어우러질 '무엇'이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무엇'이 교훈이나 명언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성 교육을 받기 위해 뮤지컬 공연장을 찾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3월 13일까지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