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 소량 생산 시스템으로고가 용품시장서 돌풍을 일으키다
최근 국내 골프용품 업계에서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고가 브랜드 전략을 고수하지만, 6개월마다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꾸준히 선보여 골프 마니아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아사가오골프(이하 아사가오)다.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한번 아사가오의 클럽을 사용한 사람들은 그 매력에 푹 빠진다. 기술력에 대한 확신 하나로 국내 시장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사가오의 이민 대표를 만나 비즈니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일본 오사카 근교 효고현의 서부 히메지시에 위치한 히메지성(Himaji Castle)은 복잡하고 교묘한 방어구조를 가진 성으로 유명하다. 히메지 성은 과거 이 지역에 거주했던 아카마츠 가문이 다이묘(지방 권력자)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건축한 일종의 요새다. 수많은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탓에 히메지성이 위치한 히메지사는 전쟁에 필요한 검을 만드는 기술이 일찍부터 발달해왔다.
당시 검을 만들던 장인들과 그 가문은 2차대전이 종료된 1940년대 후반부터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기 위한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검을 제조해오던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 접목한 것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골프채였다. 철을 가공하는 주조기술이 골프채 제작 과정에 유용하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지역은 일본 내 골프클럽 생산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선 골프채를 제작하는 장인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민(37) 아사가오 대표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이 지역 장인들과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이민 대표는 말한다. “우연한 기회에 히메지시 지역 장인들이 운영하는 골프채 제작 공장을 방문했어요. 골프채 생산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어떤 확신 같은 게 들더군요. 장인들이 만드는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시장에 선보이면 분명 가능성이 있겠다는 거였죠. 곧바로 그분들과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드릴 테니 함께 사업을 시작해 보자고요.”
일본의 골프채 장인들 역시 이 대표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반겼다. 사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자신들만의 기술력을 탑재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브랜드화할 통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건 기존 일본 골프 브랜드의 제품을 위탁 제작·생산하는 것뿐이었다.
사업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브랜드 이름을 ‘아사가오’로 정했다. 아사가오는 나팔꽃을 의미하는 일본말이다. 일본에선 나팔꽃 외에 ‘새롭게 시작하는 좋은 기운’이라는 또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골프용품 시장에 새로운 기운을 주입하겠다는 이민 대표의 의지가 오롯이 담긴 브랜드가 바로 아사가오다. 이민 대표는 브랜드가 확정된 2009년 말부터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샘플을 만들어 시타를 하는 지루한 일상이 2년 넘게 반복됐다. 지겨울 법도 했지만, 이 대표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올랐다. 과거 골프용품 유통업을 하며 쌓아왔던 노하우를 기반으로 직접 골프채 디자인에 관여하기도 했다. 특히 아사가오 골프채 디자인의 백미로 꼽히는 ‘자개(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내 만든 아름다운 빛깔의 조각. 고급 가구를 장식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역시 이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대표는 말한다. “솔직히 자개를 골프채 헤드에 삽입한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만큼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기술력뿐 아니라 디자인 측면에서도 아사가오만의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의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당시의 시도는 지금까지도 아사가오만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이 대표는 디자인뿐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아사가오만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선 골프클럽 성능 부분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반발력(공이 멀리 나가는 힘)을 높이기 위해 기존 골프 헤드(골퍼가 공을 타격할 때 접촉하는 부분) 제작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이 대표는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골프클럽의 헤드 부분은 바닥, 뚜껑, 페이스(타격 시 공이 실제로 닿는 부분)를 따로 제조해 용접하는 단조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하지만 아사가오는 모든 부분을 하나의 형태로 제작한 뒤, 이를 샤프트와 결합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조립방식이 아니다 보니 더욱 정밀한 제작이 가능해 성능을 월등히 높일 수 있었어요.”
이뿐만이 아니다. 아사가오는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지난 2011년부터 소량생산·소량판매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수많은 브랜드가 난립해 있는 골프용품 시장에서 소량제작 시스템을 선택한 것은 흔치 않은 시도임에 분명하다.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한 신생 브랜드로선 도박과 같은 선택이었다.
현재 아사가오는 일본 현지 공장에서 6개월에 한 번씩 200~300여 개의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꾸준히 성능 및 디자인 업그레이드도 이뤄지고 있다. 다소 높은 가격임에도 대부분 제품이 6개월 이내에 모두 판매된다. 특히 아사가오의 대표 제품인 고반발 드라이버 제품 ‘골드 프라임’은 200만 원 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최신 티타늄 소재를 통한 고반발력과 크라운 부위의 고급자개 디자인을 앞세워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민 대표는 “아사가오는 기본적으로 시니어 층을 타깃으로 고가 브랜드 전략을 펼치고 있다”면서도 “단순히 가격을 볼 것이 아니라 기술력의 차이, 디자인의 차이를 눈여겨 봐주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사가오는 경기 침체로 인한 골프용품 시장의 불황에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브랜드 론칭 초기인 2011년 당시 2~3개에 불과했던 유통채널도 지난해 기준 50개 가량으로 증가했다. 골프 마니아 사이에서 ‘격이 다른 골프클럽’이라는 입소문을 타며 매출 역시 상승하고 있다. 이 같은 성장세에는 골프클럽의 성능 외에도 확실한 사후관리 서비스(AS) 시스템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대표는 말한다. “물론 기존 골프용품 회사들도 AS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사가오는 기존 회사보다 AS 기간을 단축해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죠. 특히 해외 브랜드의 경우 골프채 수리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희는 일본 현지 공장에서 교육을 받은 인원을 활용해 최소 3일, 최대 일주일 내에 수리를 완료할 수 있도록 신속한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아사가오의 당면 목표는 지난해 출시된 최고급 라인업 ‘프라우디아’와 올해 초 출시 예정인 티타늄 신소재 ‘Xat’ 기반의 골프클럽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공인 반발력을 갖춘 클럽 개발에 착수, 현직 프로골프 선수들에 대한 후원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홍콩, 미국 등 기존 진출 시장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 등 신규 시장에서도 아사가오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각오다.
아사가오는 향후 3년 내에 ‘골프 리더스 커뮤니티’라는 일종의 오프라인 카페를 오픈할 예정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와서 골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직접 용품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이민 대표는 아사가오를 통해 진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며 조금은 뜻밖의 말을 꺼내 놓았다. 바로 주니어 골퍼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오래전부터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골프선수를 꿈 꾸지만 형편이 어려워 엄두를 못내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이죠. 아사가오의 기술력이 녹아든 주니어 골퍼들을 위한 골프채를 제작하고, 이를 무료로 제공해 그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