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인도 뭄바이 Mumbai 슬럼가에선 위생시설이나 수돗물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하나의 방에 한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잠을 자기도 한다. 글로벌 보건 기구 아메리케어스 AmeriCares는 약 5년 전 이곳에 이동식 진료소를 열었다. 지역 병원에 갈 버스 요금마저 버거운 슬럼가 주민들이 호흡기 질환이나 위장장애 등을 치료 받기 위해 이동식 진료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헬스 왜건 Health Wagon이라는 단체도 애팔래치아 Appalachia 외딴지역 구석구석을 찾아가 영양 부족으로 시달리는 산간 지방 사람들의 당뇨 관련 안구질환을 검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혁신적인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은 후, 이동식 진료소는 전 세계로 퍼지며 스스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미국 관리의료지(American Journal of Managed Care)에 따르면, 미국 내에만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거의 2,000개에 이르고 있다. 수백만 명의 환자 대부분이 노숙자거나 시민권 혹은 집을 잃은 사람,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 이 이동식 진료소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늦은 여름 오후, 이동식 진료소 한 곳이 캘리포니아 북쪽 뜻밖의 자리에 문을 열었다. 샌타클래라 카운티 Santa Clara County-미국 내에서 가구 당 중간소득이 가장 높다-에 소재한 거대 그래픽 반도체기업 엔비디아 Nvidia의 화려한 본사 주차장에 둥지를 틀었다. 이 곳엔 BMW와 테슬라 Tesla 차량이 즐비하다. 이 캠퍼스의 연간 평균 임금은 13만 달러에 이른다. 그럼에도 2개의 진료소와 1개의 실험실을 갖춘 길이 11m 규모의 번쩍이는 이동식 진료소 RV 차량이 들어와 있다. 차량에는 베이 에어리어 Bay Area 내에 15개의 사무실을 보유한 비영리단체 팰로 앨토 메디컬 파운데이션 Palo Alto Medical Foundation(PAMF) 마크가 붙어 있다.
‘케어러밴 Care-A-Van’이라 불리는 이 차량의 서비스를 받는 실리콘밸리 대기업은 10곳 이상이다. 앤비디아뿐만 아니라 이베이 eBay, 주니퍼 Juniper, 오라클 Oracle, 페이팔 PayPal, 샌디스크 SanDisk, 브이엠웨어 VMware 등이 이용하고 있다. 차량에서 근무 중인 의사 할레 셰이콜에슬라미 Haleh Sheikholeslami는 지난 2년 동안 여러 극적인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심장마비 진단을 몇 차례 내린 바 있으며, 최근에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개발자를 병원에 보내 즉시 4개의 동맥 스텐트 시술을 받도록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경험은 진료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진료하는 환자들의 평균연령이 40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성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발진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물론 극도의 우울증을 보이는 환자들도 있다. 1년 중 날씨가 맑은 날이 260일이나 되는데도 다수의 환자가 비타민 D 결핍 증세를 보이고 있고, 반복 동작 및 신체활동 부족으로 인한 안구 문제와 신체 여러 부위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다.
콜레스테롤 문제나 고혈압, 높은 트리글리세라이드 수치 같은 문제가 특히 눈에 많이 띈다고 한다. 모두 당뇨와 심장질환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징후다. 셰이콜에슬라미는 “많은 이들이 대사증후군 문제를 안고 있다”며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갈 뿐만 아니라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고 트리글리세라이드 수치는 높아 여러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어러밴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의 다른 이동식 진료소 환자들과 달리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중 40%는 주치의가 없다. 이민자라서 미국 보건의료체계를 깊이 검토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과중한 업무량 탓에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몇몇 환자들은 진료 받는 중에도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한다.
싱하는 아시아, 특히 인도계 환자에게 관심이 많은 건강 및 웰빙 전문가다. 그가 2013년 케어러밴을 시작한 이유는 놀라운 현상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우선 일반적인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진료하는 환자들의 신체 상태가 나이에 맞지 않았다. 싱하는 영양 및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실리콘밸리의 급속 노화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는 목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온 34세의 프로그래머를 일례로 들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심각한 퇴행성 관절염이 드러났다. 올바르지 않은 자세와 인슐린 저항, (인슐린 저항과 함께 가공 탄수화물 및 당분의 다량 섭취로 인한) 조직 염증 때문에 발병한 것이었다. 대개 70대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통증 유형이었다. 싱하는 50대의 몸을 한 30대 엔지니어를 많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배가 나왔고, 허리가 굽었으며, 피부색이 탁하고, 관절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활력이 부족하고 당뇨 및 심장질환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싱하는 아시아 환자들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인도계 미국인인 그는 실리콘밸리 아시아계 직원들의 명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몸무게와 건강 때문에 문제를 겪었던 그는 서양 척도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매우 잘 알고 있다. 보통 다른 인종에 비해 비만도가 낮은 인도인들에게 당뇨와 심장질환 위험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이는 인도인의 신체 무게 분포가 서양인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인은 팔이 더 가늘고 근육량이 적다. 인도인의 체질량지수(BMI)는 더 낮은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위험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인은 복부 지방이 많은 경향이 있다. 이는 가장 위험한 특징이다. 때문에 싱하는 최빈곤층에 시행되는 혁신을 실리콘밸리의 부유한 동네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닥터 론 Dr. Ron으로 알려진 싱하는 정신 없이 바쁜 인물이다. PAMF 일을 하면서 개인 진료도 계속하고 있다. 고강도 전력질주를 포함한 자신의 운동 루틴과 고영양 저탄수화물 식단 덕분에 탄탄한 몸매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사우스 아시안 헬스 솔루션 South Asian Health Solution’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영양학을 쉽게 풀어 설명하며 전박 측면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요가 자세에 대한 다이어그램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블로그 하나를 운영하며 3권의 전자책을 썼고, 테드엑스 TEDx 에서 연설도 두 번 했다. 실리콘밸리 강의 프로그램을 통해 정기 강연도 하고 있다. 선 채로 듣는 ‘첨단기술기업에서 심장마비를 예방하는 법’ 같은 주제의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싱하는 여러 일화를 통해 “고위험 임신부터 자가면역질환에 이르는 질병의 발생비율이 IT기업에서 과도하게 높다”는 주장을 신속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면 일화만으론 부족하다. 베이 에어리어에는 하루 18시간 일하고 좀비처럼 보이는, 마감 때문에 바쁠 땐 레드불이나 애드럴 Adderall, 심지어 코카인까지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다 알고 있다. 하지만 소문이 무성하다는 것만으로 문제가 급격히 퍼지고 있다는 확신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싱하에게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했다. 그는 나에게 다시 한번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쿠퍼티노 Cupertino에 있는 한 스타벅스에서 싱하를 다시 만났다. 그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몇 마디 하더니 필자에게 7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건넸다. PAMF 고객사 중 한 곳에서 진행한 신체 검사 결과를 세세하게 분석한 내용이었다. 우린 고객사를 익명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대기업 중 한 곳이라고만 해두겠다. 싱하는 검사 참여자들의 인구통계학적 분포가 대부분의 고객사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결과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500여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검사는 인슐린 저항 환자를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인슐린 저항이란 포도당을 혈액에서 세포로 흡수시키는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증상이다. 인슐린 저항을 보이는 신체에선 세포가 인슐린과 포도당의 흡수를 거부한다. 포도당이 근육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지방 세포로 보내진다. 모두가 동의하는 원인은 없지만, 비만이 한 원인이라는 수많은 증거가 제시되어 왔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의 인슐린 저항은 더 심해지고, 그에 따라 살이 더 찌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싱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가공 탄수화물과 당분이 높은 식단이 주범이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신체활동 부족이 인슐린 저항을 유발한다는 것을 밝힌 연구도 많이 나와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적인 IT기업은 인슐린 저항을 야기하는 ‘완벽한 환경’으로 보인다. 직원에 대한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당분과 탄수화물이 많은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에너지 드링크와 음료수를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자기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도 한다. 당연히 모두가 마감기한에 쫓기며, 남보다 앞서기 위해 미친 듯이 경쟁을 한다. 그 영향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대학생활 때의 ‘프레시먼 피프틴 freshman 15 *역주: 대학 1학년생에게 자주 나타나는 체중증가 현상’을 기억하는가? 베이 에어리어에선 ‘페이스북 피프틴 Facebook 15’이나 ‘트위터 트웬티 Twitter 20’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보통 의사들은 심장질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LDL 증가 수치를 참고한다. 싱하는 또 다른 척도 하나를 강조한다. 그는 “대부분의 심장질환을 유발하는 것은 표준 콜레스테롤 검사에서 측정하는 LDL이 아니다”라며 “심장질환은 훨씬 더 복잡한 병이고, 근본원인은 염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PAMF는 트리글리세라이드와 HDL-좋은 콜레스테롤-의 비율을 주목하고, 인종에 맞게 조정한 BMI와 허리둘레 통계를 활용하고 있다. 분석의 척도에 변화를 주자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나타났다.
LDL만을 기준으로 한 경우, 싱하의 검사에 참여한 백인 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약간 높은 수준을 보인 사람은 약 25%였다. 아시아 및 인도계의 경우에는 이 같은 수치를 나타낸 비율이 19%였다. 하지만 트리글리세라이드와 HDL 비율을 기준으로 한 경우, 백인의 30%가 위험군으로 분류됐으며, 아시아계는 40%가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계는 그 비율이 55%로 가장 심각한 수치를 보였다.
혈압, 콜레스테롤 및 트리글리세라이드 수치, 허리둘레, BMI 등의 요소를 모두 고려했을 경우, 결과는 더욱 암울해진다. 검사 대상 중 거의 75%에 이르는 백인이 당뇨나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요소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 아시아계 중에선 81.8%가, 인도계 중에선 92%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IT 직원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계임을 고려한다면,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수치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다. 최소한 싱하의 검사 측정치를 4명의 전염병학자 및 공공보건 전문가들에게 보여준 필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들이 전반적으로 높은 당뇨 및 심장질환 발병 확률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워싱턴대학교 보건영양센터(Center for Public Health Nutrition at the University of Washington) 국장인 전염병학자 애덤 드레노스키 Adam Drewnoski 교수는 “미국 내 일반대중의 당뇨 및 심혈관계질환은 저임금 및 교육부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싱하가 진행한 검사는 미국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소아 비만 및 당뇨 전문가이자 ‘불가능한 미션: 설탕, 가공식품, 비만, 그리고 질병 극복하기(Fat Chance: Beating the Odds Against Sugar, Processed Food, Obesity, and Disease)’의 저자인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 Francisco) 로버트 루스티히 Robert Lustig 교수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인도계를 중심으로 진행된 당뇨 연구(별도의 측정방식을 사용했다)를 언급하며 “실리콘밸리의 표본에서 훨씬 더 높은 비율이 나타났다. 교육 수준이 높으면 상황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선 당분이 많이 함유된 가공식품 위주의 끔찍한 식단이 일반적인데, 아시아 및 인도계는 그나마 이런 음식을 가장 적게 먹는 편”이라고 주장했다.
싱하와 그의 고객사를 연결해주는 것은 인사관리부서다. 하지만 이 부서의 그 누구도 이런 내용을 언급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필자는 어도비 Adobe에서 야후 Yahoo에 이르는 베이 에어리어 내 40여 개 기업의 인사부서 복지혜택 책임자들을 대표하는 ‘실리콘밸리 기업 포럼(Silicon Valley Employers Forum)’ 사무국장 리사 이 Lisa Yee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국장은 수많은 건강복지 프로그램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IT기업과 대화를 나눠보면, 이 문제가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사안이라고 말한다”며 “내가 계속 듣는 이야기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투자하는 것에 비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원인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빅데이터와 분석론의 힘을 수없이 강조하는 실리콘밸리다. 그럼에도 포럼 회원 일부는 직원의 건강한 생활습관을 장려하는 건강복지 프로그램(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의 효과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 밖에도 실리콘밸리의 생산성 우선문화도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 국장은 “야후가 가장 적절한 사례”라며 말을 이었다. “머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가 곧 쌍둥이를 낳는다. 좋은 소식이다. 그녀는 경력을 유지하면서 가족에도 충실할 수 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임기 끝까지 일한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정말로 중요한 건 생산성이라는 것? 이는 인사부서에서 보장하려는 일과 삶의 통합, 균형과는 반대되는 가치다.”
필자를 진료하는 베이 에어리어 지역 의사 버트런드 반드빌 Bertrand Vandeville은 불균형으로 인해 여러 여파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최근 진료를 받은 후 그에게 요즘 어떤 문제에 주목하는지 질문했다. 그는 “요즘 환자들이 리탈린 Ritalin과 자낙스 Xanax를 혼합한 처방을 요구하곤 한다”며 “하나는 낮에 일할 수 있게 해주고, 다른 하나는 밤에 푹 잘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으며 필자는 커피와 와인을 마시는 습관에 대해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반드빌은 “그리고 20~30대 젊은이 중 많은 이들이 겨울이 오면 오랜 기간 호흡기관 이상을 앓는다. 여러 주 동안 낫지 않으면 비정상인데, 이것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트레스는 신체의 코르티솔 cortisol 분비를 촉진한다. 코르티솔은 배고픔을 느끼게 하고, 인슐린 저항과 복부 지방을 배가시키는 저영양 고열량 음식을 섭취하게 만든다. 심장질환은 가장 극적인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싱하는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우울증으로도 나타난다”며 “우울증에 걸릴 이유가 없는 환자들은 가족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결혼생활도 좋고 재정상태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이 모든 것보다 영향력이 크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만성통증이나 소화건강 문제로 나타난다.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싱하의 자료를 확인한 필자는 미 질병통제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가 이 같은 실리콘밸리의 실상을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PAMF의 검사결과를 확인해달라고 CDC 관계자에게 요청하자, 센터 정책 때문에 민간 자료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싱하의 자료를 CDC 보고서와 비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으며, 싱하의 데이터팀도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싱하는 인종에 맞게 조정한 측정치를 사용하지만 CDC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싱하의 검사에선 고혈압에 대해 좀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참가자의 포도당 검사 전 12시간 금식을 의무화하지도 않고 있다(개인 검사에선 중요한 요소지만, 전사 대상 검사에선 비현실적인 방식이다). 간과할 수 없는 요소들도 있지만, 대략적으론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하다. CDC에 따르면. 2012년 성인 미국인의 35%, 그리고 40세 미만 중 18%가 3개 이상의 신진대사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하의 검사결과를 기준으로 하면 같은 상황에 처한 백인의 비율이 29%로 나타나는데,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40세 미만 직원의 수를 생각한다면 상당한 수치라 할 수 있다. 비인도계 아시아인은 46.1%가, 인도계는 자그마치 54.2%가 이 같은 분류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는 이러한 현상의 확대를 관찰하기에 흥미로운 곳이다.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쓰러지면, 스트레스가 심한 사무직 라이프스타일로 인한 해롭고 극단적인 악영향이 회자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흥미로운 또 다른 점은 이곳에 문제가 기회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 개선을 통해 시스템과 수익을 최적화하는 수많은 명석한 학생, 기업가, 과학자, 자본가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불거지는 상황에서도 문화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 해결책이 곧 등장할 것이다.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미 일정한 형태의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시행 정도와 효과는 각양각색이다. 몇몇은 성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회의실에서 진행하는 10회짜리 요가 수업이나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스트레스 및 식단에 대한 정보, 그리고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정기적인 ‘건강’ 식사나 운동시설 등이 그런 것들이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의 환자를 진료하는 조던 슐레인 Jordan Shlain 박사는 이러한 프로그램에 반대를 하고 있다. 그는 “기업의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pplied Materials나 페이스북 같은 소수의 베이 에어리어 기업들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간식만큼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크로스오버 헬스 Crossover Health의 도움을 받아 정교한 현장 건강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건강증진센터에선 물리치료, 지압요법, 침술요법과 함께 1차, 긴급, 온라인 치료 서비스는 물론 다양한 건강 관련 교육과 생활건강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캠퍼스 내에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을 갖춤에 따라 활용도 또한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크로스오버의 CEO 스콧 슈리브 Scott Shreeve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페이스북 직원 가운데 65% 정도가 건강 센터를 이용한다”며 “센터 이용신청 비율이 상 100%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에도 건강 센터-이곳도 크로스오버가 관리한다-가 있다. 진료소라기보단 애플스토어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애플 인사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데니즈 영 스미스 Denise Young Smith는 지난해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현장 근무 의사 7명으로부터 최소 한번 진료를 받은 직원 수가 4만 3,000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센터에는 지압치료사, 물리치료사, 영양사로 구성된 팀이 있으며, 평균 대기 시간이 5분 미만이라고 했다. 슈리브는 “우리가 관리하는 센터를 이용하는 직원들의 경우 응급실 방문 빈도가 현저하게 감소했다”며 “그렇지 않은 회사 동료들에 비해 입원 위험성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디지털을 활용해 건강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기업도 많다. 아마도 그 중 가장 앞서 있는 곳이 오마다 헬스 Omada Health일 것이다. 비만 관련 만성질병 퇴치를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 제3차 투자유치를 통해 4,800만 달러를 추가 확보한 업체다(비만 관련 만성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한 해 5,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마다는 기업 및 보험사와 협력해 자사의 당뇨 예방 프로그램을 보건 표준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회원 각자에게 휴대폰 칩이 내장된 디지털 체중계를 우편으로 보내 자동으로 체중을 기록하게 하고, 각 개인이 건강 코치와 함께 하는 16주 과정의 프로그램을 이수해 좀 더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마다의 공동설립자이자 CEO인 숀 더피 Sean Duffy는 “건강과 당뇨 위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올바른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적절한 수준의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더피는 캘리포니아의 비만 관련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필자에게 트러스트 포 아메리카스 헬스 Trust for America’s Health와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에서 매년 발표하는 ‘비만 현황(State of Obesity)’ 보고서를 확인해보라고 조언했다. 1990년만해도 캘리포니아 거주 인구 중 비만인 사람은 10% 미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이 수치가 거의 25%까지 증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5년 후 캘리포니아 내 비만 관련 암질환은 2배 이상, 심장질환은 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건 다른 지역 사람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통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의 중심지가 됐다”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순가치 약 100억 달러를 지닌 인물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다. 마크 저커버그 Mark Zuckerberg의 하버드 시절 룸메이트이자 페이스북의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Dustin Moskovitz의 자산이 그 정도다. 저스틴 로젠타인 Justin Rosenstein도 나쁘지 않다. 그는 구글에서 제품 관리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해 구글 드라이브 Google Drive와 구글 챗 Google Chat을 개발했다. 그 후 모스코비츠의 요청을 받고 페이스북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모두가 알고 있는 ‘좋아요’ 버튼을 개발한 기술팀을 이끌었다.
두 사람 모두 정신 없이 바쁜 업무문화 속에 부를 쌓은 인물들로 이제는 과거를 약간 후회하고 있다. 모스코비츠는 페이스북 초기 시절에 대해 “일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아마존 같은 극단적인 문화를 일부러 만들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실리콘밸리에선 일반적인 방식이었다”며 “우리는 단순하게 푹 빠져있었으며, 그 결과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 영향이 신체적인지 정신적인지에 대해 묻자 그는 “양쪽 모두다. 허리에 문제가 생겼고 전반적인 건강이 좋지 않다. 체중이 많이 불고 몸매도 나빠졌다. 계단을 너무 빨리 오르면 숨이 차오른다”고 답한다. 모스코비츠는 “페이스북의 식단은 합리적이었지만 건강에 나쁜 음식이 많이 쌓여 있었다. 매일 사탕 같은 것을 먹곤 했다. 탄산음료도 많이 마셨다. 아마도 물보다 탄산음료를 더 많이 마신 것 같다”고 회고했다. 로젠타인은 구글에서 일주일에 65시간 일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제 그 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당시에는 내 상태가 끔찍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모스코비츠와 로벤타인은 2008년 페이스북을 떠났다. 그들은 이메일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팀워크 및 생산성 증진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아사나 Asana를 설립했다. 필자는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 Mission District에 위치한 아사나 본사에 앉아 그들에게서 아사나의 문화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옛 친구와 동료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 구상한 내용이었다. 모스코비츠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떠난 후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 그건 비극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들에게 투자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했다”며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경제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들은 로젠타인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상태에 이르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좀 더 사려 깊고 지속 가능한 업무 방식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를 아사나 웨이 Asana Way라고 부른다. 로젠타인은 이 방식의 중심 내용을 담은 3페이지 정도의 문서를 필자에게 건넸다. 몇몇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내용이었다. ’객관적인 사람을 고용하라‘거나 ’말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하지 말라(그러나 필요할 땐 할 수 있다)‘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내용도 있었다. 특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인 정책은 책임분배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일반적인 기업문화에선 디자이너가 회사의 자산을 창출하고 상급자의 허가를 받아 운영을 한다. 그러나 아사나에선 상급자가 멘토나 고문에 좀 더 가까운 역할을 한다. 로젠타인이 피드백을 제공하긴 하지만 디자이너가 이를 수용할 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로젠타인은 “나를 존중하기 때문에 조언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견이 다르면 그들 뜻대로 한다. 알다시피 그들의 책임을 덜어줄 순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야 그들이 정말 강력한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느낌을 받는 문화 형성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더 좋은 사람들을 영입해 더 오랫동안 일을 함께할 수 있다.” 이는 아사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상황 통제성이 높은’ 직업-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일-과 좋은 건강 사이의 연관관계가 밝혀지고 있다.
아사나 웨이는 투명성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재정 세부사항은 회사 전체가 공유한다. 회의의 최소화도 시도하고 있지만(예컨대 수요일에는 절대 회의가 없다), 한편으론 직원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도록 해 동료의식 증진도 유도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은 아침, 점심, 저녁식사가 깔끔한 식당에서 제공된다. 기업 자체 요리팀이 만드는 식단에는 생선, 닭고기, 채소가 많이 사용 되지만 가공 탄수화물과 디저트는 쓰이지 않는다. 이 회사는 신체 및 정신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 매일 요가 수업이 있으며 최고 경영진도 정기적으로 이 클래스에 참석한다. 모스코비츠가 직접 나서 직원들이 휴가와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조언을 하고 있다. 직원 모두에게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 인체공학 전문상담을 비롯해 업무장소 최적화 지원금 1만 달러를 제공하고 있다.
아사나 웨이에선 무엇보다도 균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생각이 분명한 로젠타인은 ‘사려 깊음’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그는 거의 매일 명상을 하고 있다. 가끔은 사무실에서도 한다. 그는 일과 삶 사이의 균형, 그리고 인지에 의한 생산성 최적화를 다룬 짐 로 Jim Loehr와 토니 슈워츠 Tony Schwartz의 2005년 경영지침서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Power of Full Engagement)’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다. 초반 원칙 중 하나는 직책 사용을 피하는 것이었다. 좀 더 성과 중심의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모스코비츠와 로젠타인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에게 10년 이상 경험을 갖춘 베테랑과 같은 권한을 주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원칙을 재고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건강한 업무 문화 구축을 위한 이런 총체적인 접근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스코비츠와 로젠타인은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직원들로부터 건강이 좋아졌고 스트레스도 줄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나는 최근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하고 직원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다. 회사가 필자에게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직원 포용력 부문에서 아사나는 98분위(98th percentile)의 점수를 받았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권위부여, 가치, 의사소통을 3대 주요 동력으로 꼽았다(아사나는 사업 성과도 우수하다. 14만개 이상의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어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업체라고 자부하고 있다).
모스코비츠와 로젠타인 각 개인에게도 개선 효과가 있었다. 로젠타인은 근무시간을 주당 50시간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모스코비츠는 “이젠 허리가 거의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필자는 실리콘밸리 관련 기사를 20년 동안 써왔다.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를 다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싱하가 실리콘밸리 근무자들의 어려움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알려주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를 놓친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게 불행한 것일까? 그래서 기업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 Glassdoor에 전화를 걸었다. 글래스도어는 행복지수 자체를 측정하진 않지만 ’일과 삶의 균형‘과 ’보상과 복지혜택‘ 관련 정책에 관한 순위를 매기고 있다. 필자는 40개 이상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맨해튼의 금융업체, 디트로이트 자동차업체, 필라델피아 로펌, 보스턴 보건의료업체 등과 비교하는 보고서를 요청했다. 실리콘밸리 IT업체들을 시애틀, 보스턴, 뉴욕 시 등의 IT업체들과 비교하는 보고서도 별도로 요청했다. 그 결과는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몇몇 예외를 제외한다면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San Jose 주변 지역 기업들은 1위 혹은 그 근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스스로 미리 예상했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봉이 높은 그들은 지식적인 측면에서 자극을 받고있다. 원대한 목표를 위해 일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다. 만약 ’일과 삶의 균형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일에 완전히 내던지고, 책상 밑에서 자거나 잠을 전혀 못 잘 수 있다고 예상한 사람들이다. 업무강도와 업무량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실리콘밸리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곳에선 필요한 것이 모두 제공된다. 이발을 해주고, 세탁물을 배달해주며 이동수단도 제공해준다. 모든 종류의 식사도 갖춰져 있다. 실리콘밸리는 오랫동안 많은 사무업무와 높은 스트레스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하지만 풍부한 음식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부분이다. 구글은 1999년부터 닷컴 열풍이 끝날 때까지 무료로 진수성찬을 제공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기업들도 최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구글의 선례를 따랐다. 음식은 인재 영입을 위한 전술인 동시에 직원들이 캠퍼스에 계속 머물며 생산성을 향상시키게 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어쩌면 이것이 실리콘밸리 직원들의 직장 문화를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 원인일지도 모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케슬러 David Kessler는 2009년 자신의 저서 ‘과식의 종말(The End of Overeating)’을 통해 에너지 집약도가 높고 ‘매우 맛있는’ 음식의 생물학적 영향을 다룬 바 있다. 케슬러에 따르면 이 같은 음식이 뇌에서 엔돌핀으로도 알려진 오피오이드를 자극하는데, 이는 모르핀이나 헤로인 자극을 받은 것과 유사한 것이다. 케슬러는 “고당분, 고지방 음식을 섭취할 때 분비되는 오피오이드는 자극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통증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안정감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DA 국장 시절에 거대 담배기업과 맞섰던 그는 이제 식품 대기업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싱하와 그의 동료들이 밝혀낸 현상이 보이는 만큼 심각한 것이라면, IT업체들 또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생산성이라는 미명 하에, 업무 문화를 최적화하고 인간 자체의 중요성은 최소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싱하와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필자는 실리콘밸리가 일하기 위험한 곳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가 묘사한 현상이 시한폭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관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료한 환자들 대부분은 도움이 필요해 자신을 찾은,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떤 측면에선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한폭탄이 터지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위급한 증상은 위급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장마비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상당 기간 잠복해있는 낮은 수준의 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바빠, 이 문제를 잠시 뒤로 밀어두고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항상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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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의 시니어 에디터를 역임한 이 글의 필자 제프리 오브라이언 Jeffrey O’Brien은 베이 에어리어에 위치한 스튜디오 스토리티케이 StoryTK-기업들을 위한 글을 쓴다-의 공동설립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