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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난다'는 이제 옛말
"싱글맘 아이 성관계 일찍하고 못살면 약물중독 5배 더 많아"
부모 소득따라 자녀 미래 결정… 서글픈 美 현실 한국과 닮은꼴
저소득층 생애초기 특별지원금 무상과외 확대 등 해결책 제시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주무대이던 1980~90년대 쌍문동은 뭐든 가능한 골목이었다. 반지하 셋방살이 덕선이와 옆 동네 대궐 같은 집에 사는 만옥이 사이에는 흉허물이 없었고, 연탄가스를 마셔가며 자란 보라나 학원 한번 안 가고 독서실에서만 공부한 선우도 검사든 의사든 될 수 있었다. 향수를 자극한 이 드라마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까지는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던, '개천에서 용 나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분명 한몫 했으리라.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인 저자는 자신이 나고 자란 오하이오주 포트클린턴의 얘기로 책을 시작한다.
"포트클린턴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선로가 있다. 이 선로를 기점으로 낙후된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부유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처럼 준비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슬프게도 포트클린턴의 이야기는 오늘날 미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11쪽 중에서)
1950년대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한 곳이었지만 지난 30년간 그 꿈은 깨졌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부러져 버린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저자는 왜 이렇게 됐는지를 가족, 양육, 학교 교육, 공동체라는 4가지 큰 주제로 나누어 진단한다. 부모들 간의 경제적 불균형이 이러한 조건들을 통해 결국 우리 아이들의 미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부모의 소득격차가 두 배일 경우 그 자녀가 겪는 육체적 학대, 부모의 죽음, 이웃의 폭력, 투옥이나 약물 중독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할 가능성은 2배를 넘어 5배를 웃돈다. 부모가 아이에게 쓰는 돈도 1970년대에는 소득 상위층과 하위층이 3배 정도 차이를 보이던 게 2000년대에는 6배 이상 벌어진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비유하듯 빈부격차에 의해 각기 다른 출발 선상에 선 아이들은 주거, 생활, 교육 등 모든 부분에서 훗날 더 큰 격차를 경험하게 된다. 상위계층의 아이들이 경험한 안정적인 부모의 지원은 대물림으로 '선순환'하고 하위계층의 아이들이 겪은 불안하고 부정적인 사건들은 '악순환'으로 거듭된다. "어린 시절의 일부분을 싱글맘과 보낸 아이들은 성관계를 더 일찍 갖게 될 수도 있고, 따라서 젊은 나이에 싱글 부모가 되는 등 순환과정이 재현되기도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자칫 환경결정론인 듯한 전개 때문에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 버티고 있으니 끝까지 책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저자가 '특별 지원금' 지급 등 몇 가지 해결책을 제안한다. "아이의 생애 초기 5년 동안 가정 소득이 3,000달러 증가하면 SAT 성적 20점에 달하는 학업 성적 증진이 일어나고, 이후의 삶에서 약 20%의 더 높은 소득 증가 효과가 있으니 아이들의 뇌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 0세부터 6세까지 초기 유년기에 가난한 가정에 지원금을 주자"는 것. 어린 시절에 받은 약간의 배려가 이후 아이의 학업 성적과 평생 소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더불어 학교 교육 차원에서 멘토링 프로그램, 무상 과외활동 등을 확대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하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 못지않게 '더 슬프게도' 미국의 지난 30년간의 이야기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실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책에 눈이 가는 이유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