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 전문가 인터뷰┃김성훈 의약바이오컨버젼스연구단장

“한국 제약 · 바이오 산업의 성공 전략은 장기적 혁신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것”


김성훈 서울대학교 의약바이오컨버젼스연구단장은 생명공학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세계 최초로 체내 단백질의 암 억제 기능을 규명하고 당뇨 치료 효능을 가진 새 단백질을 발견한 주인공으로 명성이 높다. 그에게 한국 제약·바이오 분야의 동향과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 반가운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 대표 제약업체 중 하나인 한미약품이 8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미약품이 올린 성과는 국내 제약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한 쾌거라고 볼 수 있다.

김성훈 단장도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특히 복제약 생산-영업-판매라는 구태의연한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전략적 연구개발(R&D) 노력이 향후 한국 제약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말한다. “그간 국내 제약산업은 복제약 개발을 중심으로 내수 시장에 주로 집중해 왔습니다. 해외 시장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했죠. 장기적으로 시장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제약업계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의약품과 기술이 매력적인지를 알아내고, 장기적으로 집중 투자를 해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미약품의 성과는 의미가 큽니다. 눈앞에 보이는 매출에만 매달리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 노력이 빛을 발한 거죠.”

최근 수년간 국내 제약업계는 앞다퉈 신약 개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이 신약 개발의 정체기였다고 평가한다. 글로벌 제약업체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주된 배경이다. 글로벌 강자들이 몇 걸음씩 앞서가면서 국내 제약업계와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훈 단장은 말한다. “국내에서는 어떤 분야든 연구개발에 나설 때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단기적인 성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약 개발 분야는 철저히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리스크가 있더라도 장기간 특정 분야에 집중해야 성공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김 단장은 신약 연구개발 분야에서 제약업계와 정부, 학계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정부는 신약 개발을 보다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하고, 학계는 선진국의 연구를 따라가기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독창적인 연구와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합니다. 또 제약업계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접목해 당장의 매출보다는 미래 가치가 높고 독창성 있는 신약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누구도 걷지 않은 하얀 눈밭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뚝심 있게 걸어보겠다는 도전정신이 현재 국내 제약산업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약·바이오 산업 선진국에서는 산·학·연 협력 모델인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신약 연구개발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제약산업연맹(EFPIA)이 손잡고 설립한 ‘혁신의약기구(IMI)’가 EU 내 산·학·연 네트워크와 오픈 이노베이션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0년 신약 개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성훈 단장이 이끄는 의약바이오컨버젼스연구단(이하 연구단)은 산·학·연 협력 모델 중 ‘연’에 해당하는 연구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에 의해 설립된 연구단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신약 개발을 위한 지원을 목표로 한다. 오는 2020년까지 총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신약 개발 과정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초기 단계의 체계적인 연구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김 단장은 말한다.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조류독감, 메르스 등의 각종 전염병은 앞으로도 심심찮게 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예방하고 치료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약업계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죠. 세계적으로 신약 개발은 20년 넘게 정체를 겪고 있습니다. 만약 신종 질환을 치료해야 할 신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 전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저희 연구단에는 국내 주요 대학교들과 주요 국가연구기관 연구진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생명과학 및 신약 개발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게 목표입니다. 특히 신규 신약 타깃을 20개 이상 발굴해 국내외 제약업체들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신약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는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인 ‘바이오 시밀러(Biosimilar)’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이 대거 나오면서 불기 시작한 바이오 시밀러 열풍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바이오 시밀러 시장이 국내 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바이오 시밀러 열풍에 대해 김 단장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그는 말한다. “제약 시장은 크게 혁신신약, 개량신약, 복제약 시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각의 시장은 저마다 장점과 위험요소를 갖고 있죠. 바이오 시밀러는 큰 틀에서 보면 복제약 시장에 해당됩니다. 복제약의 경쟁력은 충분한 인프라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설비가 확충돼야 대량생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바이오 시밀러 시장도 거대 인프라의 유무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저는 국내 기업이 잠시 바이오 시밀러 시장에서 앞서간다 하더라도 결국은 중국, 인도 같은 거대 신흥국가에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업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해 왔던 조선업 등의 대형 인프라 산업이 지금은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는 다른 제조업들도 중국의 맹추격을 허용하고 있죠. 바이오 시밀러 시장에서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김 단장도 바이오 시밀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바이오 시밀러보다 국내 제약업체들이 월등히 잘할 수 있는 곳에 좀 더 집중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단장은 “국내 제약업체들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우수한 개발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를 활용해 아무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혁신신약을 개발해 그 시장에서 리더십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