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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후변화체제에 따른 화석연료 소비 감소와 공급 과잉이 유발한 저유가로 세계 에너지 시장은 판매자 위주 시장에서 구매자 중심 시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중동에 치우쳐 있던 액화천연가스(LNG) 도입선을 미국·호주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중동에 절대 밀렸던 협상력도 높아지고 있어 우리에 불리했던 도입계약의 독소조항을 없애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해외자원개발도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가스 배관망 사업부터 글로벌 메이저와 협력을 강화해 탐사·시추 사업으로 확대해나가겠습니다."
이승훈(71·사진) 사장은 30여년을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경제학을 가르쳤던 정통 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지난해 7월 가스공사 수장에 오르며 경영자로 변신하자 주위에서 우려의 시선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장 체제의 가스공사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순항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4일 서울 남대문로 가스공사 스마트워크센터에서 만난 이 사장은 가스공사의 경쟁력에 남다른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 사장은 "구매력 기준(연간 30조원)으로 세계 1위 기업이 바로 가스공사"라며 "가스 도입부터 자원개발에 이르기까지 이런 강점을 활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자원개발과 관련해서는 "욕심으로 홀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며 "글로벌 업체와 손잡고 우리가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하류 사업(LNG 기지 및 배관망 구축)부터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도 저유가 등으로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이라면서도 "연료전지, LNG 벙커링 등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연구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에게 요동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가스공사의 미래 비전과 전략 등을 물어봤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어렵다. 올해 경영은 어떨 것으로 보나.
△지난해 유가가 급락하며 가스 판매가격이 떨어져 매출이 30%, 약 10조원 넘게 줄었다. 이 부분은 가스 도입가격과 판매가격이 연동돼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하지만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가스 판매물량이 10%가량 감소한 것이다. 올해도 판매물량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미수금 이슈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가스공사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호가할 때 가스를 해외에서 100원에 사서 70원에 팔았다. 30원을 손해 본 것이다. 이 돈을 가스요금에 전가하지 못하고 빚을 지게 됐다. 이런 미수금이 총 5조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LNG 도매가격이 석탄이나 벙커C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발전소들이 더 싼 석탄을 선호하다 보니 가스 수요가 줄었다. 내년 3월께 미수금이 모두 회수되면 부채비율도 200%대로 떨어져 경영여건이 나아질 것이다.
-시장이 공급 과잉일 때 협상을 통해 가스를 싸게 들여와야 하지 않나.
△LNG는 액화석유가스(LPG)와 다르다. LPG는 압력으로 눌러 부탄가스통에 넣어서 옮기면 된다. 하지만 LNG는 영하 160도 이하로 유지해야 천연가스가 액화가 된다. 일반 통에 담으면 기온이 영하 160도 이상이기 때문에 기화돼 폭발한다. LNG를 액화해서 가져오는 기술과 비용도 만만찮다. 문제는 LNG를 액화해 저장해도 1년이 지나면 기체가 돼 다 날아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LNG는 만들면 금세 사가야 하고 또 금세 팔아야 한다. 이런 특징으로 LNG는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었다. 여기에다 우리와 일본은 천연가스 공급이 일시적으로라도 끊기면 국내 혼란이 온다는 점을 중동 국가들이 협상에 이용해왔다. 가스 도입을 책임지는 가스공사로서는 가스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사온 게 사실이다. 사온 가스는 국내로만 들여오고 딴 데로 옮길 수도, 팔 수도 없는 이른바 '도착지제한조항'도 중동 국가들만 내세우는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우리로서는 가스 도입가격 등 조건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하는데.
△북미 셰일가스 및 호주 가스의 등장 등으로 가뜩이나 공급 초과 시장이 더 심화하고 있다. 그 결과 가격 결정이 경직됐던 가스 시장이 점점 유연해지고 있다. 우리와 일본은 세계 가스 시장의 큰손이다. 공급 과잉 시장에서는 힘이 세진다. 특히 우리는 최근 호주·미국 등과 도착지제한조항이 없는 가스 계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이미 여기에서 들여온 가스 일부를 유럽에 되파는 계약도 했다. 호주와 북미 가스를 지렛대로 삼아 중동산 가스 도입계약의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겠다. 앞으로 맺는 중장기(5~10년) 가스 계약은 도착지제한조항을 맺지 않을 계획이다.
-경영개선을 위해 해외자원개발 자산을 매각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 유가 하락으로 가치가 낮아진 해외자산을 팔면 헐값매각이 된다. 그 경우 손실은 메울 수 없다. 해외자원개발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오히려 바잉 파워가 강해진 지금 해외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이 부분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알짜 해외자산이 나오더라도 산다는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여론이 안 좋은 것은 부담이다.
-어떤 식으로 해야 자원개발의 실패를 줄일 수 있을까.
△해외 사업은 가스를 탐사해서 시추·개발하는 상류 사업과 가스를 액화하는 중류, 액화된 가스를 가져와 저장탱크에 넣고 송출하는 하류 사업이 있다. 부가가치는 하류에서 상류로 갈수록 높다. 하류 사업과 관련해 글로벌 기술 수준이 10이라면 가스공사는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중류와 상류는 각각 4, 6쯤 된다. 가스공사가 단독으로 투자한 이라크 아카스 사업은 현재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점령당해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업체들이 투자한 이라크 지역에는 IS가 없다. 메이저들은 정치적 이슈까지 감안해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가스공사는 중·상류 사업 경험이 없기 때문에 메이저 에너지 업체와 일단 함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중·상류 사업의 노하우를 빠른 시일 내에 흡수하는 형태로 갈 것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LNG 저장기지와 배관망을 설치하는 하류 사업에 나선다. 온실가스 감축 등의 문제로 세계적으로 가스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석탄은 탄소 배출 문제로, 원전은 안전성 문제로 더 늘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아직 단가가 비싼 태양광을 이른 시일 내에 화석연료 대체용으로 쓸 수 없다. 결국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온실가스를 덜 뿜는 천연가스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앞으로 아프리카 몇몇 나라가 LNG 사용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파이프를 쓰는 리투아니아도 눈여겨보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 업체와의 협력이 중요할 것 같다.
△지난해 12월 글로벌 업체 엑손모빌과 사업 기회를 함께 발굴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우리는 바잉 파워를 갖고 있다. 글로벌 업체와 중·상류 사업을 하고 시추·액화된 가스는 우리가 국내 소비용으로 사 들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까지 우리는 해외자원개발에 나설 때 지분을 5~10% 이상 투자할 수 없었다. 해외자원개발은 지분투자자 중에서도 30% 지분이 있는 핵심 운영자(오퍼레이터)들만 시추와 탐사 등 핵심 부분에 투입된다. 가스공사는 바잉 파워를 이용해 알짜 해외 사업에 지분을 30% 이상 투자하고 메이저 업체의 기술을 전수받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펴겠다.
-미래 성장을 위해 신경 쓰는 분야가 있다면.
△소규모 분산전원으로 활용되는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수소를 뽑아내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연료전지의 연료는 수소이고 이를 가장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원천은 천연가스다. 천연가스가 탄소 하나와 다량의 수소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포스코에너지와 워킹그룹을 만들어 이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가스 가격이 싸지면서 선박들이 벙커C유 대신 LNG를 쓰고 있다. 가스 선박에 LNG를 충전하는 일이 LNG 벙커링이다. 올해 안에 부산시 소유의 연안 어선에 LNG 벙커링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익 다각화를 이루겠다. 지난해 LNG를 선박에 저장하는 창고(화물창) 설계기술을 확보하고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과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우리 LNG 화물창 설계 사용비용은 60억원으로 프랑스 회사 GTT보다 40억원가량 싸다. 북미 셰일가스 도입 선박 등에 우리 설계기술을 판매해 수익을 높이겠다.
/정리=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대담=이상훈 경제부 차장 shlee@sed.co.kr
사진=권욱기자
He is … △1945년 대구 △1963년 경기고 △1970년 서울대 전기공학 △1976년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박사 △1977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2001년 전기위원회 위원장 △2011년 한국계량경제학회·산업조직학회 회장 △2010년 서울대 명예교수 △2013년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 △2015년 한국가스공사 사장 |
"이젠 가스 에너지 시대… 앞으로 100년은 간다" 李사장이 보는 에너지 미래는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co.kr "이제까지 석유가 세계 경제의 생명줄이었다면 앞으로는 가스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가스 중심의 에너지 시장은 향후 100년간 유효할 것으로 봅니다."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액화천연가스(LNG)의 미래를 밝게 봤다. 전통 화석연료인 석유가 전 세계 경제와 산업에서 차지했던 자리를 천연가스가 대신하리라는 것.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약에서 채택된 새로운 기후변화감축체제인 '포스트 2020'에 따라 주요국들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당장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이나 풍력이 석유를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공급이 원활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석탄·석유의 절반에 불과한 가스 사용을 늘리는 쪽으로 에너지 시장의 흐름이 흘러간다는 얘기다. 이 사장은 "갈수록 세지는 기후변화 대응에도 불구하고 현재 태양광이나 수소에너지의 발전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안 쓸 수는 없다"면서 "석탄·석유의 수요가 줄고 줄어든 수요는 화석연료 가운데 가장 청정하다는 가스로 넘어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스 수요가 늘면서 장기적으로 국제유가와 가스 가격도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사장은 "생산 과잉과 수요 감소로 국제유가가 향후 계속 떨어진다고 가스 가격까지 같이 하락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수요 변화에 따라 가스 가격은 올라갈 수 있고 이 때문에 해외 가스 자산을 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탄 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세계 에너지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 모르기 때문에 전체 발전의 30~40%를 석탄 발전에 의존하는 현 체제는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이 사장은 "기후변화를 수용해 적어도 석탄 발전을 추가 건설하지 않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의 큰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