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 다카요시 지음, 새움 펴냄
친구는 자산이라 했거늘, 그 자산이 지옥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보자. 내가 무엇을 하든 나도 그도 편한 진짜 자산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사방에 대인관계의 안테나를 둘러치곤 섬세하게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며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 많이들 하는 페이스북을 생각해보자. 친구의 게시물에 관심 없어도 습관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있진 않은가. 책은 이런 불편하고 의미 없는 상태를 ‘친절한 관계’라고 정의한다. 대립의 회피를 최우선으로 하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책은 친절한 관계를 아등바등 이어가려는 젊은 세대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서로 지극히 주의 깊게 배려하고, 충돌을 최대한 피하려 신중한 흐름을 이어간다. 살얼음 밟듯 조심스럽게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 행동해야 하는 긴장감도 끊임없이 감돈다.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잘못 읽어버리면 관계에 금이 가고 파탄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배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집단 괴롭힘을 의미하는 ‘이지메’(いじめ)다.
책은 이지메라는 지뢰를 밟지 않으려 눈치 보는 교우관계,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순수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친구 지옥’이란 감옥에 갇힌 현대 젊은이들을 분석한다.
‘글로벌화와 경제원칙의 파도를 뒤집어쓴 채 위선에 익숙해진 청년들.’ 친절한 관계의 원인과 실태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저자는 시장 경제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왜소한 인간상이 급속히 확산했다고 진단한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능숙하게 전환함으로써 상황 자체를 적극적으로 변환시키는 게 능력이 되는 세상. 자연스레 커뮤니케이션 교육도 인간성을 고양할 수 있는 대인관계가 아닌 협상을 원활하게 진행하며 분위기의 흐름을 읽어내 대처하는 데 방점을 찍게 됐다. ‘100% 순수한 나’보다는 적당히 눈치 보며 주위가 요구하는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해야 살아남는 세상이란 이야기다.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이 암울한 현상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특정 개인·국가의 문제 이상의, 한 세대의 특수성을 넘어 전 세대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책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발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고통 없는 삶이란 카페인 없는 커피나 다름없다.’ 삶의 고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다운 인간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금 내 모습이 보인다면 저자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게 아닐까 싶다. 끝이 다소 허무하지만 말이다.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