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佛 생테티엔미술관서 개인전 여는 이강소 화백 "나는 단색화가 아니다"

"나를 낮추고 없앰으로써 조화 찾는 것이 작품 화두"

대표작 '허' '무제' 시리즈 등 90년대 이후 작품 20여점 선봬

_DSC0933
'이강소'전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생테티엔미술관 전시 전경
이강소 선생님 미술관 인물사진

1975년 제9회 파리청년비엔날레. 전시에 초청된 한국의 젊은 작가 이강소는 멍석 위에 모이통을 놓고, 그 주변에 밀가루를 뿌리고는 닭 다리에 끈을 묶어 반경 570㎝를 마음껏 움직이게 했다. 3일간 돌아다닌 닭의 허연 발자국은 작품이 되어 벽에 걸렸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저 닭을 풀어놓고 지켜봤을 뿐이다. 이 작품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세계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40여 년이 지나 프랑스가 다시 한 번 이강소(73·사진)를 찾았다.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은 이달 초 '이강소'전을 개막해 오는 10월 16일까지 연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 화백의 회화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였다. 생테티엔미술관은 유럽에서는 이례적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곳으로 중국의 쩡판즈와 한국의 이우환·박서보·정상화 등이 이곳에서의 전시를 발판으로 거장 반열에 올랐다. 전시를 기획한 로랑헤기 생테티엔미술관장은 "그간 소개된 한국작가들의 자기 억제적 엄숙함과 섬세한 단색화적 우아함에 매료됐던 유럽 관객들에게 이강소의 회화 작품은 한국의 추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 개막식 후 귀국해 14일 기자와 만난 이 화백은 '단색화'의 급부상으로 한국미술이 세계의 이목을 끄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나는 단색 화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나는 없다"고 강조한 이 화백은 "나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나를 낮추고 없앰으로써 '조화'를 찾으려 하는 것이며 이는 성리학의 선비정신이나 사군자의 겸허한 격조와도 닮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예술적 화두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이며, 작업 또한 "희로애락을 드러내 남을 자극하려는 게 아니라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나를 없앤 상태에서 즉각적 제스처"로 임하는 무아(無我)의 과정에서 이뤄진다. 대표작은 '허(虛·Emptiness)'와 '무제'시리즈다.

앞서 이강소는 1973년 명동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소멸, 선술집'이라 제목 붙이고 전시장을 술집처럼 꾸몄다. 관객에게 뭔가를 보여주기보다는 소통과 참여를 제안한 것이었다. 이후 선보인 그의 회화는 여백의 미와 일필휘지의 과감함이 공존하며 거침없는 붓질이 '오리'처럼 보인다고 해 '오리그림'이라고도 불린다.

"오리로 보든 배,사슴으로 보든 상관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인지하고 즉시 사라지는 환상일 뿐이죠. 각자 자신이 판단하고 느끼고 경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조화를 위해 예술가는 사고전환을 빨리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조화로움에 대한 추구를 통해 기계론적 사회에서 통하는 새로운 윤리와 도덕체계도 생각할 때라고 봅니다."


관련기사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