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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최대 제약사로 뉴욕 증시에 상장된 밸리언트의 주가 폭락 사태가 바이오 버블 붕괴의 전주곡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며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 시가총액이 7개월 만에 92조원 넘게 증발한 밸리언트는 지난해 회계보고서를 시한을 넘기며 제출하지 못해 회계조작 의혹도 커지고 있다. 밸리언트 사태는 엔도·호라이즌 등 경쟁사와 바이오업계로 전염돼 이들 기업가치도 급락, 삼성 바이오 사업의 미국 증시 상장 계획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바이오 기업과 투자자들도 밸리언트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힘을 얻고 있다.
밸리언트 주가는 17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11% 넘게 급락하며 29.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5일 파산 우려 속에 하루 동안 주가가 51% 빠지며 반 토막 난 데 이어 바닥을 알 수 없는 형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밸리언트 주가가 지난해 8월5일 262.52달러에 비하면 7개월 만에 89%나 하락해 시총이 896억달러에서 이날 101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고 전했다.
밸리언트의 주가 폭락은 15일 한국의 연간 사업보고서에 해당하는 '10-K' 보고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이달 16일과 30일까지 제출할 수 없어 300억달러의 회사 채무에 대해 채권단이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밸리언트 사태의 실질적 원인은 장밋빛 회사 전망을 위한 매출 부풀리기와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 폭리를 위한 약값 인상 등으로 일찌감치 문제를 잉태해왔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지적했다.
연구개발(R&D) 대신 경쟁 바이오 업체 M&A에 돈을 쏟아붓는 밸리언트의 전략 실패는 자초한 측면도 있다. 밸리언트는 인수 기업이 보유한 전문의약품 약값을 1년여 만에 30배 가까이 인상하는 등 폭리를 취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이 같은 약값 인상이 사회 문제화하자 미국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까지 나서 "제약사가 터무니없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밸리언트 등 약값을 무리하게 올린 제약사가 미국 의회와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조사를 받고 약값 인상 계획도 상당 부분 폐기해야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밸리언트 사태 속에 전문 의약품업체인 엔도가 이번 주 29%나 주가가 떨어졌으며 지난해 8월 이후로는 65% 폭락했다고 전했다. 비슷한 바이오 기업인 호라이즌과 말린크로트 역시 최근 한 주간 20%가량 주가가 하락했으며 양사 모두 지난해 8월 이후로 보면 주가는 반토막 났다. WSJ는 "최근 S&P500지수의 상승 속에 바이오 업체의 주가 폭락은 두드러진다"고 꼬집었다.
밸리언트는 뒤늦게 향후 R&D에 집중하고 M&A는 자제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마이클 피어슨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채권단과 채무계약 조건을 조정해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장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레그 길버트 도이치뱅크 연구원은 "밸리언트의 매출과 수익 전망이 이미 크게 악화돼 바이오 업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올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적절한 밸류에이션을 받기 힘들어져 장기간 상장 작업이 미뤄질 상황에 처했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바이오 업체는 화려한 전망이 아닌 실제 실적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국내에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바이오 기업들이 많은 만큼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