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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면세점에서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요새 고민이 많다. 그동안 해외 지점 및 현지 여행사와 협력해 한류 등 다양한 마케팅을 선보이며 관광객을 유치했지만 중국 등지의 반응이 예년만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일본 등 대체 관광지가 부각하면서 쇼핑 외 콘텐츠를 문의하는 비교 수요가 부쩍 늘었다. A씨는 "이전에는 면세점 쇼핑을 충분히 넣기만 해도 쉽게 고객을 모았지만 상황이 좀 달라졌다"며 "한류·테마파크 외 큰 볼거리가 없어 경쟁국에 밀리는데다 국내 면세점 수도 늘어나 (매출이) 전보다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면세 한류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근 1년 동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면세점을 둘러싸고 내분을 겪고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는 동안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태국·대만 등 경쟁국이 면세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정부 차원에서 지원사격을 가하면서 글로벌 1위 면세 국가의 타이틀을 내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메르스 사태와 경쟁국의 적극적인 관광정책 강화로 중국인 관광객(유커)의 한국 방문이 줄어드는 등 국내 관광산업 전반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각에서는 조선·자동차·게임 등 다른 산업군과 마찬가지로 면세산업도 일본과 중국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일본·중국은 한국 면세점의 장점인 '시내 면세점'을 벤치마킹하며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시내 면세점은 관광 위주 국가나 신흥국 등이 전개하는 모델로 각종 유통 업태가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일본은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형 면세점 모델을 도입해 면세시장을 확대한다는 구상을 마련했다. 올 초 도쿄 긴자를 시작으로 수십 개의 시내 면세점이 예고된 상태다.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사후 면세점도 대폭 늘렸다. 1년 새 5,800개에서 무려 1만8,000개로 3배 이상 늘었다.
중국도 관광객 이탈을 막기 위해 하이난성에 세계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연 데 이어 올해부터 고가 용품, 핸드백 등의 수입 관세를 대폭 인하했다. 외국 면세점 이용을 줄여 중국 내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내국인용 면세점을 확대하는 한편 입국장 면세점까지 만들겠다고 밝히는 등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거센 도전은 면세 한류에 크나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경쟁국의 면세정책 강화로 우리나라의 가격·브랜드·상품 경쟁력이 잠식당할 게 뻔하다고 걱정한다. 면세점은 일종의 임대 수수료 형태인 국내 백화점과는 달리 직접 물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직매장으로 매출이 클수록 상품가격을 낮추고 이익을 높이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면세점 가격은 타국에 비해 화장품 2~3%, 주류·담배는 5~10% 더 저렴하다. 일본·중국 등 아시아 시내 면세점 중 국내처럼 루이비통·에르메스·샤넬 등 3대 명품이 모두 입점한 곳도 아직 없다.
하지만 쇼핑 인프라가 구축되고 관광객도 늘어나면서 이들 국가의 면세점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대만 에버리치와 태국 킹파워는 독점 민간 사업자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롯데(세계 3위)와 신라면세점(7위)에 이어 각각 9위와 10위로 올라섰다.
글로벌 국가 관광 경쟁력(29위)이 일본·싱가포르·홍콩 등에 현저히 뒤지는 우리나라가 그간 세계 면세시장에서 1위(10.5%)를 유지해온 것은 쇼핑에 특화된 관광 경쟁력 때문이다. 유커의 대부분이 입국 목적으로 쇼핑을 꼽는 등 쇼핑 인프라는 국내 관광환경의 핵심이고 이 중 시내 면세점은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찾는 그야말로 관광 경쟁력의 요충지다.
하지만 쇼핑에 특화된 국내와 달리 천혜의 자연환경, 편리한 관광자원 등의 강점을 지닌 경쟁국과의 '비교우위'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유커는 약 499만명으로 전년 대비 83% 급증했다. 반면 국내의 유커 재방문율은 2010년 38%에서 2013년 26%로 급감한 상태다.
여기에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가 15년 만에 추가로 발급되는 등 국내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 수는 지난해 6개에서 9개로 늘었고 추가로 2~4개 더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업체 간의 과당경쟁에 따른 소모적 비용 등이 자칫 타국과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잠재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안승호 한국유통학회장(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은 "경쟁국의 면세시장 가세와 다특허 시대 등으로 국내 면세업이 총체적 변화의 국면을 맞았다"며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산업 측면에서 정부와 업계 모두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