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랜드 런, 톰 크루즈가 말 달린 이유는?



‘초원의 집’과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1972년부터 10년간 장기 방영된 미국 드라마와 1992년 할리우드 개봉작이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땅(the land), 땅이 공통의 주제다. 일요일 아침마다 잔잔한 감동을 주던 ‘초원의 집’은 미국 정부가 거의 공짜로 불하한 공유지에 자리 잡은 개척민 가족의 얘기를 그렸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는 땅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니콜 키드먼에게 ‘땅이 없는 남자에게는 영혼도 없어요’라는 말을 듣고 낙심했던 가난한 청년 톰 크루즈의 몽환적인 상상 속에서 이 영화는 끝난다. 톰 크루즈의 상상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실제였다. 땅을 원하면 먼저 깃발을 꽂는 사람이 임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극적인 땅 불하는 1889년 오클라호마주에서 일어났다. 3월 22일 정오. 기병대 장교가 권총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탕!’ 소리와 함께 대기 중이던 군중들은 말이나 마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뛰어나갔다. 좋은 땅을 찾기 위해서다. 오클라호마주 곳곳에 마련된 행사 장소에 모였던 사람은 무려 5만여명. 광활한 대지가 흔들렸다.

무엇이 사람들을 내달리게 했을까. 두 가지다. 땅과 선착순. 어떤 땅이든 먼저 깃발을 꽂는 자에게 내준다니 숨이 터져라 달렸다. 한 사람당 160에이커(약 19만 5,970평)씩 불하된 토지의 가격은 공짜나 다름없었다. 5년간 경작하면 토지 무상 불하. 6개월만 경작해도 에이커당 1달러 25센트라는 초저가로 토지를 구입할 자격을 줬다.

미개척지 불하의 법적 근거는 1862년 링컨 대통령이 만든 홈스테드법(Homestead Act·자영농지법). 자영농에게 토지를 불하하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주목을 끌었지만 실은 해묵은 과제였다. 19세기초부터 요구가 많았다. 특히 개척민들의 목소리가 컸다. 공유지는 모든 미국인의 공유재산이니까 무상분배해야 한다는 개척민들의 요구는 통했을까.

반대다. 묵살됐다. 북부는 가뜩이나 모자란 공장 노동력이 서부로 이동할 것을 우려했다. 남부는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북부세력의 서부 확대를 도끼눈으로 쳐다봤다. 돈을 주고 토지를 사서 먼저 이주한 개척민과의 형평성도 문제로 떠올랐다. 지역별 계층별로 이해가 엇갈려 입법되지 않았던 법을 통과시킨 것은 전쟁.


남북전쟁이 터지자 링컨 대통령은 서부에 당근을 주고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는 계산에서 법을 통과시켰다. 남부의 탈퇴로 반대세력도 거의 없었다. 늘어나는 이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동북부 산업자본의 공산품 수요기반을 조성하며 영토를 늘려줄 서부 개척을 촉진한다는 다목적 카드인 홈스테드법은 하원 107대16, 상원 33대7의 표 차이로 의회를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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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드법의 본격적인 실행 대상은 오클라호마주 일대 188만여 에이커. 1만 2,000여 가구가 땅을 얻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오늘날 한국의 절반 이하로 잡아도 쌀로 친다면 가구당 2,500~3,000가마(80㎏들이 기준)의 소출을 낼 수 있는 농지를 얻은 꼴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랜드 런은 수많은 성공 신화를 낳았다.

1934년까지 농민들에게 불하된 땅은 남한 면적의 33배 규모인 2억7,000만에이커. 줄잡아 200만명 이상이 이 법의 혜택을 입었다. 미국 농업의 경쟁력이 여기서 나왔다. 농업기계화가 일찍이 달성된 것도 이 법으로 탄생한 수많은 대형농의 수요 덕분이다. 부작용도 따랐다. 미개척지의 사유재산화가 사적 무장을 낳고 총기 확산과 미국인의 호전적 기질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석꾼 이상의 꿈을 안고 기름진 땅을 향해 달린 ‘랜드 런(Land Run)’의 이면에는 투기꾼들의 부추김도 있었다. 투기꾼들은 자원과 목재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가족을 동원해 땅을 확보하거나 땅을 불하받은 정착민들을 꼬드겨 이면 약정으로 땅을 사들였다. 결과적으로 토지 불하자의 40%만 정착에 성공했다.

불하 면적과 랜드 런의 규모는 20세기 들어 작아지고 가격도 올랐지만 경제의 동력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유럽 기준이라면 영주에 해당할 정도의 기름진 내 농토를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이민행렬을 낳았다. 국제적인 명성도 얻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가 홈스테드법과 랜드런을 모방했으니까.

백인들은 애써 감췄으나 아픔도 컸다. 가장 큰 피해 집단은 터전을 빼앗기고 학살당한 아메리카 원주민. 소유개념만 없었을 뿐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미국 정부가 촉토족과 체로키족 등의 거주공간이라고 설정한 인디언 준주마저 물밀듯 들어오는 백인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오클라호마주 사람을 일컫는 별칭이 ‘the sooners(먼저 차지한 사람들)’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백인들의 희망과 성공의 이면에는 ‘언제나 먼저 빼앗긴 원주민들의 비극’이 깔려 있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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