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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봄을 닮은 첫사랑의 추억

● 초원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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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봄'과 닮아 있습니다. 아직 겨울이구나 싶은데, 느닷없이 찾아오는 봄. 변덕스럽게 찾아오는 꼿샘추위 때문에 맘 편히 즐기지 못하다 어영부영 사라져버리는 봄처럼 첫사랑도 그렇게 예고없이 찾아와 아쉽게 떠나갑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문득 그리워지는 첫사랑.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 다시 그 사람을 만나라면? 그건 또 별로입니다. '사랑'이라고 이름붙이기엔 뭔가 부족하고 어설프고 혼란스러웠던 감정,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 깔끔하지 못한 이별...첫사랑은 '추억'에서 꺼내볼 때가 가장 아름답죠. 첫사랑을 다시 만나서 좋았다는 사람을 저는 아직 못봤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거나 대실망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영화라 그렇겠지만, <초원의 빛>(1961년작, 엘리아 카잔 감독)의 디니와 버드만 빼고 말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순수하게 잘 자란 아름다운 디니(나탈리 우드)와 모든 여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부잣집 훈남 버드(워렌 비티)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어른들입니다. 디니의 엄마는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딸을 감시하고 전형적인 마초, 버드의 아버지는 '성공'만을 강요합니다. 서로를 사랑하는만큼 서로를 '소유'하고 싶고, 그 '소유'는 '죄의식'을 동반하기에 피끓는 청춘들은 고민합니다. 사랑하는 여자는 순결하게 놔두고 싶고 욕망은 타오르고, 혼란스런 버드는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디니에게는 이보다 더한 충격이 없습니다.

멀어져가는 버드를 붙잡기 위해 진한 화장과 야한 옷차림으로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버드는 도망가버립니다. 자살까지 시도한 디니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파산한 아버지가 자살하자 방황하던 버드는 순박한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해버립니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걸까요? 디니도 병원에서 만난 존과 결혼을 약속하고 퇴원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디니에게 말하죠. '버드에 대한 감정이 확실해져야만 행복해질수있다'고. '두려움은 막상 마주하면 별게 아니다'는 의사의 조언대로 디니는 용기를 내어, 버드의 농장에 갑니다. 버드는 많이 변해있습니다. 예전의 말쑥한 부잣집 도련님에서 영락없는 농부이자 가장이 되버린 버드. 한때는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다 잠깐 마주합니다.

디니는 버드를 닮은 아기를 사랑 가득 담긴 눈빛으로 안아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행복하냐'고 묻고 '다음달에 결혼한다'는 소식도 전합니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가슴이 얼마나 아플지, 관객들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헤어지는 두사람. 멀어져가는 차 안에서 디니는 예전, 수업시간에 낭독하다가 목이 메어 차마 읽지못한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떠올립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 되돌릴수 없다해도 슬퍼하지 않으리. 그 속에서 오묘한 힘을 찾으리니….'

알파고 시대라 그럴까요? 사랑에 대한 젊은이들의 고민도 예전과 비교해보면 디테일하고 현실적입니다. '실연의 아픔'마저도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인지, 청춘일 때는 모를테니까요. 버드에 대한 사랑으로 디니는 정신병원까지 갔지만, 그토록 누군가를 온전하게 사랑해본 디니의 인생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깊이가 있을겁니다. 돈, 돈, 돈 머리 속에 욕심만 가득한 속물어른들은 절대로 받을 수 없는 최고의 선물, 사랑!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10년 후에는 웃으며 말할 수 있을테니 걱정말고 사랑하세요, 봄이니까요….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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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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