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기업여신 떠맡다가..국책 銀 건전성 '골병'

현대상선 등 구조조정 지연에 충당금 적립률 70% 대로 급락

전체 은행도 93%...5년래 최악

팔자니 구조조정 위축, 놔두자니 부담 '부실채권 딜레마'

증자 통한 자본확충 등 대책 시급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 대기업이 속출하면서 은행 건전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했다. 특히 시중은행이 손쉬운 가계대출에 치중한 사이 기업여신을 떠안은 국책은행들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등 대책이 시급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의 기업여신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전년 대비 11.8%포인트 급락한 93.4%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계기업이 대거 늘어났던 2010년(93.1%)에 근접한 수준이다. 기업부문 여신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100%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기업의 여신이 모두 부도날 경우 은행들이 현재까지 쌓아놓은 대손충당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충당금 적립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은의 기업부문 충당금 적립률은 78.6%, 수은은 79.9% 에 불과하다. NH농협은행은 58%에 불과해 현재 보유 중인 부실여신 중 절반만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건전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2014년 2.49% 수준이던 산은의 부실(고정이하)채권 비율은 현대상선과 STX조선해양의 부실채권 여파로 5.68%로 급등했다. 1년 만에 늘어난 부실여신 규모는 4조2,000억원에 달한다.

국책은행들의 부실 채권이 대거 늘어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은행권의 부실채권 비율은 1.80%로 집계돼 2010년(1.90%)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감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은행의 건전성이 크게 악화했다”며 “상반기 대기업 신용위험평가가 진행되면 부실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국책은행들의 건전성이 나빠진 배경에는 조선·해운업 불황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업종에 속한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중은행이 지원을 포기했지만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퇴출을 억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국책은행이 부담을 떠맡은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 STX조선과 SPP조선에 대한 채권단 협의 도중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국민은행이 지원을 거부하고 채권단을 빠져나왔다. 이들 기업의 부실채권 비율은 산은의 3분의 1 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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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포기한 부실채권은 국책은행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대우조선해양·현대상선·한진해운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의 부실채권 금액은 2013년 3월에 비해 3년 만에 5조6,000억원 폭증했다. 특히 현대상선 채권을 정상채권에서 두 단계 낮은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면서 부실여신 금액이 단번에 1조 4,000억원 늘어났다. 수출입은행도 부실채권 금액이 2013년 3월 말 5,000억 원에서 4조 원으로 8배 늘었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부실채권이 실제 부도가 날 가능성을 대비해 은행이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도 채권금액의 20~100%로 증가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감원은 은행들에 부실채권 매각을 주문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매년 관행적으로 연말마다 부실채권 비율을 1.5%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지도했지만 지난해 감독 자율화 기조에 따라 이를 폐지했는데 그 직후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늘어난 것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의 건전성 측면에서 보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되도록 빨리 채권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채권 가격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팔 것은 팔라는 의미”라고 전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부실채권 처리 요구에 국책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미 부실로 결론 난 기업의 채권을 제값 주고 사주는 곳은 없어서 은행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부실채권이 팔렸다고 해서 기업의 상환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 부실채권은 보통 상각(償却)하거나 매각하는 과정을 거친다. 상각은 원래 받을 돈을 수익으로 잡았다가 부실해진 만큼 제한다는 의미로 이 경우 전액손실로 인식해 충당금은 100% 쌓아야 한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100원을 빌려주고 30원만큼 받을 가능성이 있어도 상각 하면 무조건 100원이 손실로 잡혀 100원을 충당금으로 쌓은 후 30원을 받으면 그만큼 다시 이익으로 잡힌다”면서 “결국 은행 손실이 과장돼 은행 법인세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뿐 은행의 건전성이 좋아지거나 기업 입장에서 갚아야 할 돈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기업 채권은 채권단이 살리기로 결론 낸 상황이어서 부실채권이어도 팔 수 없다. 금융당국이 은행 건전성과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상반된 정책을 펼치면서 혼선이 빚어지는 것이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워크아웃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 은행 건전성 기준에 따라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져 은행의 부담이 커진다”면서 “기업 구조조정과 은행 건전성 중에 무엇을 전념하라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지적했다. /임세원·조민규기자 why@sed.co.kr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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