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중국 중산대학 연구팀이 ‘크리스퍼/Cas9 (CRISPR/Cas9)’라는 유전자 편집기법을 활용,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기술의 활용 가능성과 타당성을 놓고 논쟁이 촉발됐다. 부작용은 없는지, 맞춤형 아기 시대가 본격 개화될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던 작년 12월 세계 정상급 유전학자와 생물공학자, 생명윤리학자들이 워싱턴 D.C.에 모여 이 의문들의 답을 찾고, 인간 게놈 조작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크리스퍼는 현존 최고의 게놈 편집 기법이다. 이전까지 과학계는 ‘아연 집게 뉴클레아제(ZFN)’와 ‘탈렌스(TALENS)’라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했지만 2013년 정밀성과 신속성이 월등한 크리스퍼가 등장하며 연구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런 크리스퍼 덕분에 유전질환의 대물림 차단과 여타 질병의 치료에도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 라이스대학 강 바오 박사팀을 포함한 많은 연구팀이 크리스퍼를 활용, 베타글로빈 유전자의 단일 변이에 의해 발병하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치료하려 한다.
체세포 내부에서 이 유전자를 조작해 변이가 일어나도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다만 정자나 난자 같은 생식세포가 대상이 되면 연구자들도 멈칫할 수밖에 없다. 생식세포를 유전자 조작하면 질병에 대한 치료능력을 유전시킬 수 있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배재할 수 없는 탓이다.
실제로 크리스퍼는 실수로 타깃과 유사한 DNA 서열을 가진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 중국 연구팀의 배아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 “타깃 외의 대상에 미친 영향이 생식세포 내에 축적되면 인간 게놈이 영구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D.C.에 모인 석학들은 기초연구를 통해 이 같은 위험성을 더 정확히 평가해야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한 임신을 전제로 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조작 금지의 필요성도 천명했다. 이와 관련 보스턴 아동병원의 줄기세포 이식 책임자인 조지 데일지 박사는 “현 단계에선 크리스퍼가 아기에게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의 예측이 어렵다”며 “지속적인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학회장 내에서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
크리스퍼가 가진 힘이 주목을 받도록 해 대중들의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사회적 합의 없는 유전자 조작 기술은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류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크리스퍼의 긍정적 이익까지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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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산대학 연구팀이 치명적 혈액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HBB 유전자의 조작을 위해 사용한 인간 배아의 수.
ZFN - Zinc Finger Nucle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