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사극 두 편을 준비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생전 8편의 사극을 통해 영국 엘리자베스조(朝) 시대 이전 300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국가 형성 과정을 그렸다.
국립극단이 선보일 ‘리차드 3세’는 영국 판 수양대군인 리차드 3세(1452~1485)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왕권을 찬탈하기 위해 친족을 살해하고 조카를 폐위한 그는 폭정과 배신으로 왕좌에 앉은 지 2년 만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번 작품은 국립극단과 업무협약을 맺은 중국 국가화극원의 내한 초청 공연으로 펼쳐진다. 중국 전통 연극 ‘경극’의 틀을 가져가며 ‘대륙의 옷’을 입은 색다른 셰익스피어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동안 악역으로만 부각 돼 온 리처드3세의 캐릭터에 선(善)의 측면을 부여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연출을 맡은 왕시아오잉 국가화극원 부원장은 “권력자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리차드3세를 전통적인 악역이 아닌 선과 악 양면을 지닌 인물로 그렸다”고 설명했다. 4월 1~3일 명동예술극장.
서울시극단의 ‘헨리4세 Part 1·2-왕자와 폴스타프’는 시곗바늘을 좀 더 앞으로 당긴다. 헨리4세(1366 ~ 1413)가 리차드2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 벌어지는 혼란기가 배경이다. 사실 헨리4세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을 그린 메인 플롯(주된 이야기)보다는 헨리4세의 아들인 헨리 왕자(이후 헨리5세)와 궤변가 폴스타프가 벌이는 희극적인 서브 플롯 덕에 인기를 끈 작품이다. 1막에선 폴스타프의 권력을 향한 조롱, 그리고 이 난봉꾼과 어울리는 헨리 왕자의 모습이 주를 이루지만, 2막은 왕위에 오른 왕자(헨리5세)가 폴스타프를 문전박대하며 대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서울시극단 공연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에 극의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서울시극단 소속 배우 이창직이 폴스타프를, 연극 ‘레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박정복이 헨리 왕자 역을 맡았다. 4월 14일까지 세종M씨어터.
4월 28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원작으로 하는 여덟 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원작에 대한 충실함과 재해석을 기준으로 삼아 이 시대 다시 음미해볼 만한 영화들로 특별전 ‘셰익스피어 인 시네마’를 구성했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설명. 피터 브룩 감독의 ‘리어왕(1971)’,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드(1971)’, 데릭 저먼의 ‘템페스트(1979)’ 등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인 동시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영화라서 우선 골라졌다.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작품들도 모았는데, 1899년에서 1911년 사이 만들어진 다양한 무성 단편 모음인 ‘무성시대의 셰익스피어’와 셰익스피어 각색 작 중 보기 드물게 코미디·호러 장르를 택한 ‘피의 극장’ 등이다. 주연 배우와 감독 역할을 동시에 맡는 것으로 셰익스피어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표현한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1952)’와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1996)’도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