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세계사 속 오늘]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

1981년 3월3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사진/출처=픽사베이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사진/출처=픽사베이




6번의 총성이 들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연설을 마치고 자신의 리무진으로 가던 찰나였다. 기자들 사이에 묻혀있던 존 힝클리가 쏜 총알은 레이건 대통령과 그의 수행원의 몸을 관통했다. 제임스 브래디 전 백악관 대변인은 머리에 총을 맞고 중상을 입었으며 경호원인 티모시 매카시와 지역 경찰관도 총상을 당했다. 힝클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총알은 레이건 대통령의 왼쪽 폐를 뚫었다. 22구경의 총알은 다행히 심장을 빗겨나갔다.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대통령은 조지워싱턴대학병원까지 자신의 힘으로 걸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아내 낸시 레이건에게 “여보, 피하는 걸 깜빡했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담당 의사에게는 “당신이 공화당 지지자라고 말해주시오”라고 말하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다음 날 레이건 대통령은 병실 침대에서 업무를 재개했다. 4월11일 백악관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의 병실이 곧 집무실이었다. 암살시도 후 레이건의 인기는 치솟았고 의회에서도 영웅과 같은 환영을 받았다. 이는 8월까지도 이어져 논란의 소지가 많은 그의 경제 계획도 민주당의 큰 반대없이 통과할 수 있게 했다.

관련기사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부상을 입은 경호원과 경찰관도 결국 회복됐다. 눈까지 총알이 박혀 거의 죽을 뻔한 브래디도 건강을 되찾았다. 비록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었지만. 훗날 그는 총기 구매 시 구매자의 이력을 점검하도록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브래디법’을 내놓기도 했다.

25살의 살인 미수범 힝클리는 형사 입건됐다. 그는 이전에도 불법무기 소지로 테네시에서 체포된 적이 있었다. 1982년 6월 그는 정신이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에서 그의 변호인은 힝클리가 자기애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신이상으로 무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전국 각지에서 제기됐다. 대통령 암살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도 확산됐다. 결국 힝클리는 정신 질환자 보호 시설인 성 엘리자베스 병원에 수용됐다가 지난해 5월 34년만에 자유인이 됐다. /김진희인턴기자 jh6945@sedaily.com

김진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