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힘든 나날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회개하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 이야기’로도 유명하지만 정작 디킨스 자신이 꼽는 문제작은 따로 있다. 산업소설 ‘Hard Times(힘든 나날들)’다. 영국에서는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소개됐던 이 작품은 당대의 비평가들로부터도 호평 받았다. 사회개혁을 주장하던 작가이며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디킨스의 소설 가운데 최고작”이라고 꼽았다.

디킨스와 같은 시대를 같은 공간(런던)에서 살았던 카를 마르크스가 “정치나 사회의 진실에 대해 어떤 정치가나 언론인, 도덕주의자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전해준 사람이 디킨스”라고 말한 데에도 이 작품에 대한 찬사가 깔려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극과 극의 평가가 나았다는 점. “우습기 짝이 없고 불쾌한 소설”이라는 혹평(미국 평론가 에드윈 휘플)도 적지 않았다.


왜 평가가 엇갈렸을까. ‘산업 소설’이어서다. 어떤 소설보다도 당시의 산업사회를 그려냈기에 비평가들이 갖고 있는 자본에 대한 생각에 따라 평가가 달랐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으로 유리궁전(수정궁)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1851)해 국력을 뽐내던 시절, 물질문명은 끝없이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하던 시기에 디킨스는 도시의 이면과 산업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담았다.

디킨스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런던이 아닌 곳을 무대로 삼은 이 작품의 배경 도시는 코크타운. 맨체스터를 모델로 삼은 가상의 도시인 코크타운을 디킨스는 이렇게 그렸다. “코크타운은 붉은 벽돌의 도시였다. 아니, 매연과 재만 아니라면 붉은 벽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야만인의 얼굴에 페인팅을 한 것처럼 붉은색과 검은색이 부자연스럽게 섞인 도시가 되었다. 가히 기계의 도시라 부를 만했다. 공장의 높은 굴뚝에서는 매연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끊임없이 솟아나왔다. 도시에는 검은 운하가 있었고, 악취 풍기는 염료가 흐르는 자주색의 강이 있었다. …(중략)… 증기기관의 피스톤은 마치 미친 코끼리가 머리를 까닥이듯이 단조롭게 위 아래로 움직였다. 몇 개의 큰 도심은 모습이 하나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시간에 오갔고 같은 도로를 지나 같은 일을 했다. 매일이 어제나 내일과 똑같았고 매년이 작년이나 내년과 다를 바 없었다”


무엇이 도시를 음울하게 만들었을까. 디킨스는 천편일률적인 공리주리식 사고방식 탓이라고 봤다. 효율만 강조하는 공장주, 학교 이사장 같은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공리주의가 얼마나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그려냈다. 사실과 계산만을 강조하는 학교 교육의 요체는 ‘궁금해 하지 말라’이며 모든 판단은 계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학생을 부를 때도 이름 대신 번호가 쓰인다. 디킨스는 편협한 통계에 의존하여 공리주의를 강론하는 영국 정치경제의 시험장으로 변한 학교와 공장 같은 사회적 감옥을 대신할 대안으로 자유정신과 우애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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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54년 4월 1일. 디킨스가 출자한 ‘가정 잡지(Household Words)’에 연재가 시작돼 5개월 동안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뤄서인지 연재가 시작된 지 두 달 보름 만에 잡지 판매부수가 두 배 늘어났다. 연재가 끝날 무렵 잡지사는 이전의 5배나 되는 수익을 거뒀다.

비평가들의 뜨거운 논란 속에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이 소설을 디킨스는 두고 두고 잘 써먹었다. 전국 순회 낭독회에 모이는 청중들의 수준이 높을 경우 디킨스는 ‘힘든 나날들’을 힘주어 읽었다고 전해진다. 세대가 지나며 논란은 엷어지고 호평만 남았다. 삭막했던 영국 산업혁명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디킨스가 ‘힘든 나날들’을 통해 묘사한 인구의 도시집중과 극심한 경쟁, 비인간화와 저임금, 실업과 빈곤, 계층 간 갈등이 먼 나라의 옛날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꼭 우리 얘기 같다. 디킨스는 인간이 지닌 감정과 상상력, 지성, 창조력, 다양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대안으로 꼽았다. 디킨스가 162년 전에 제시한 처방과 한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한 가지 교과서만 목을 매는 형편이니. 참으로 ‘힘든 나날들’이다. 더 힘들어질까 걱정되는 마당에 디킨스 ‘힘든 나날들’에서 들려주는 마지막 문장이 귀를 맴돈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인생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질지 안 벌어질지는 바로 우리, 여러분과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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