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빅딜’과 사업 및 조직 재편, 실적하락, 여기에 엘리엇과의 경영권 분쟁까지 겹치면서 뒤숭숭한 나날을 보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물론 제일기획 매각건이 남아 있고 삼성물산 주택사업 부문도 여전히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룹의 틀에서 지난 2년 ‘앞이 안 보이던’ 상황은 조금씩 떨쳐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걱정했던 삼성전자의 1·4분기 실적이 ‘갤럭시S7’의 선전에 힘입어 ‘어닝서프라이즈’가 예상되는 점이 고무적이다.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같은 신사업 투자가 크게 늘었고 바이오는 예상보다 성장속도가 빠르다. 조금만 더 속도를 내면 휴대폰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엿보인다. 특히 조직문화의 대대적인 개혁도 준비하고 있다. ‘JY(이재용 부회장)’ 시대, 변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삼성을 3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삼성의 신사업이 쑥쑥 크고 있다. 해외 벤처투자의 선봉장인 삼성벤처투자의 투자액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다 삼성바이오는 연초부터 연이어 낭보를 들려줬다. 인수합병(M&A)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룹 재편의 핵심인 신사업 분야에서 삼성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3일 삼성에 따르면 삼성벤처투자는 지난해 신기술 분야에 7,972억원(실행액 기준)을 투자했다. 2015년의 5,587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42%나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이르면 올해 연간 투자액이 1조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익도 좋아졌다. 삼성벤처투자의 당기순이익은 2015년 33억원에서 지난해 6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AI나 VR·사물인터넷(IoT) 같은 최첨단사업에 투자하면서도 이익도 챙긴 것이다. 실제 삼성벤처투자는 최근 3~4년간 이디본과 익스펙트랩스 등 AI 기업 7곳에 투자했다. 회사별로는 수십만달러씩 돈을 댄 곳도 있다. 지난 5년간 전 세계에서 AI 스타트업에 투자한 기업 규모 가운데 4위에 오를 정도다. ★본지 3월17일자 1면 참조
VR에서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컴캐스트와 함께 VR 콘텐츠를 만드는 바오밥스튜디오에 600만달러(약 69억원)를 투자한 게 확인됐다.
삼성벤처투자는 그룹 내에서 신사업에 가장 먼저 투자한다. 이선종 삼성벤처투자 사장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계열사에서 인수하게 돕는 중간단계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벤처투자뿐 아니라 그룹 차원의 M&A 의지도 강하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부 인수를 추진했던 것처럼 필요로 하는 M&A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업, 삼성전기는 전장부품 업체를 염두에 두고 글로벌 M&A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는 기대 이상이다.
올해를 ‘베네팔리’의 유럽 판매허가로 시작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플릭사비’의 유럽 판매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일 유럽의약품청(EMA)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가 플릭사비 사용 승인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밝혔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EMA가 승인을 권고하면 2~3개월 정도 후에 실제 승인을 받고 유럽 31개국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플릭사비는 류머티즘 관절염과 궤양성 대장염을 치료하는 얀센사 ‘레미케이드’의 복제약이다. 셀트리온의 ‘램시마’도 레미케이드를 복제한 것이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플릭사비가 유럽 국가들의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되고 더 많은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이 효과가 우수한 약을 처방받을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두 번째 복제약이 사실상 판매허가를 받게 되면서 삼성 바이오 산업은 날개를 달았다. 삼성은 세계 3대 자가면역질환치료제인 ‘엔브렐’과 레미케이드, ‘휴미라’ 복제약을 모두 개발하고 있다. 이 중 엔브렐은 ‘베네팔리’라는 이름으로 1월 유럽에서 허가를 받았다. ‘SB5’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인 휴미라 복제약은 임상 3상까지 끝났다. 베네팔리는 원본약을 만든 암젠이 캐나다 정부에 허가금지 신청을 냈다가 최근 자진 철회할 정도로 삼성의 기술력이 인정받았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생산과 매출·이익 면에서 세계 1위를 이루려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말 가동을 목표로 3공장을 짓고 있다. 초격차전략을 구현하겠다는 게 로직스의 방침이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반도체 산업을 통해 학습한 생산능력이야말로 한국의 압도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국내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은 미국에 이은 2위로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