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나토)는 1949년 4월 4일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캐나다, 포르투갈 등 12개 국가 간 설립된 집단안전보장기구다. 1952년 2월 그리스와 터키, 1955년 5월 서독, 1982년 5월 스페인이 가입했다.
동서 냉전 체제 아래 나토는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서방-자본주의 국가들의 대항마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서유럽은 군사력이 바닥이었고 정치 경제적으로도 피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동유럽에 공산주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시작했고 서유럽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세력을 얻고 있었다. 이에 서유럽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은 유럽에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유럽부흥계획(마셜플랜)을 계획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브뤼셀조약에 따라 영국·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가 집단 방위 동맹을 체결했으나 미국의 힘이 필요하게 돼 1949년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북미와 서유럽 간 집단 방위 체제, 경제 협력 등을 골자로 한 나토가 탄생한 것이다.
나토 조약 중 ‘가맹국에 대한 공격은 전 가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집단 자위권을 발동한다’는 내용은 나토 軍 창설의 빌미가 됐다.
이에 소련도 1955년 5월 14일 ‘우호 협력, 상호 원조’를 내걸고 동구권 국가와의 연합, ‘바르샤바조약기구’로 맞대응했다. 냉전 속에서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 대 ‘소련-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나토는 회원국 간 이해관계에 따라 진통을 겪기도 했다. 1966년 3월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한 프랑스가 탈퇴했다가 1992년 재가입했고, 그리스와 터키 또한 1974년 키프로스 침공사태와 관련, 나토에서 탈퇴한 후 1980년 복귀한 바 있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공식 해체되기까지 두 조약기구 간 대결구도는 지속 됐다. 나토는 1992년에 소속군이 유럽의 비회원국들에게 평화유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군사적인 역할이 커지도록 했다.
냉전 종식 3년 후인 1994년 나토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태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수행했다.
NATO는 본래 목적은 소련에 대한 집단안전보장이었으나 1980년대 말 소련의 광범위한 개혁으로 냉전 구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NATO는 군사동맹에서 벗어나 유럽의 국제적 안정을 위한 정치기구로 변화를 시도하게 됐다. 소련의 붕괴로 바르샤바조약이 폐기됐고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9년 3월 체코·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2004년에는 불가리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의 동유럽 국가들이 새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2009년 4월 크로아티아·알바니아가 가입해 현재(2009년 기준) 정식회원국은 28개국이다. /김진희인턴기자 jh694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