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제 별명은 ‘미스 함’이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남 앞에 나서기를 수줍어했고 웃을 때도 입을 가리고 웃어서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랬던 시절이 어쩌면 저를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고객 앞에서는 저를 낮췄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챙겨주려 했습니다. 어떤 만남에서도 상대방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가는 저의 정성이 통했는지 운 좋게도 지점장 시절부터 본부장 시절까지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자산 규모가 300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은행 수장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인생의 성공 방정식은 바로 ‘사람 냄새’였다. 섬김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6일 경기도 용인 죽전 단국대에서 진행된 ‘대학생을 위한 CEO 특강’에서 충남 부여 외딴 시골에서 태어나 국내 최대 은행의 은행장에 오르기까지의 치열했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는 “약 35년 전 서울 한남동에서 단국대를 다닐 때 은행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은행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은 품고 있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매력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말단 행원서 행장 되기까지 섬김·배려 실천
실패 두려워 말고 남들과 다른 실력도 갖추길
금융업은 이젠 치열하게 생존 고민하는 업종
다가온 로봇시대, 젊은이에겐 새 도전의 기회
함 행장은 말단 행원에서 은행장까지 오른 그의 성공 배경에는 인간관계에 섬김과 배려라는 철학을 더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자신을 은행장으로 이끈 섬김과 배려의 자세를 몸에 배게 만든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함 행장은 “하숙을 할 때 어머니가 하숙비로 쌀 일곱 말을 들고 하숙집으로 차를 세 번 갈아타고 오셨다. 그걸 돈으로 바꿔서 보내도 되는데 굳이 어머니는 하숙집까지 쌀을 들고 찾아오셨다. 처음에는 농사짓는 어머니의 손이나 얼굴을 친구들한테 들킬까 봐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 알았는데 어머니는 직접 농사지으신 쌀을 아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하숙비를 굳이 쌀로 가져오셨던 것이었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같은 마음으로 직원들과 고객들을 섬겼다. 결국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오늘날 은행장까지 오게 하지 않았나 싶다”고 회상했다.
함 행장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를 맞아 소통을 위한 인간적인 매력을 쌓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당장 금융권에도 자산관리부터 일반 은행업무까지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함 행장은 “미래에는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알약 형태로 뽑아서 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까지 있다는데 이런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이 될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KEB하나은행 안에도 수많은 명문대 출신들이 있지만 화려한 스펙과 학벌이 성공을 보장해줄 수 없으며 얼마나 인간다운 매력이 있느냐가 결국 성공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함 행장은 또한 인간적인 매력은 결코 가식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충청 지역에서 부행장을 할 때 지역사회에서 ‘함 부행장은 정말 겸손한 사람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그 겸손이라는 것이 상대를 속이려 한 것이거나 작전이 아니었다. 배려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인데 평소에 자세와 마음가짐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 행장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테크가 아니라 남들에게 덕을 베푸는 ‘덕테크’이며 덕을 쌓은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함 행장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 또 조직 내에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조금은 허술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인간적인 사람은 호감이 가고 조금은 허술한 면도 있어야 한다. 이건 능력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다. 너무 완벽하게 보이면 상대가 다가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상대가 다가올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하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상사는 ‘호감 가는 바보’라고 하는데 리더는 다소 허술한 면을 보이며 직원들을 이끌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성공을 위해 이처럼 인간적 매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남들과는 차별화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을 보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3시간씩 365일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며 “은행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목숨 걸어라’라는 말인데 절박하고 절실하게 실력을 키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의 방식으로는 되는 게 없고 뭔가 달라야 한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구광인 함 행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의 아이콘으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을 꼽기도 했다.
함 행장은 금융인을 꿈꾸는 젊은 학생들에게 금융업은 더 이상 돈을 많이 주는 안정된 직장만은 아니고 생존의 기로에서 절박하게 노력해야 하는 업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생들의 취업 선호도에서 금융 쪽이 높은 건 월급을 많이 주기 때문이라는데 은행이 돈을 많이 벌던 시대가 지나갔다. 모바일 등 새로운 금융의 패러다임에서 금융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금융권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봐도 은행은 수도 없이 망했다. 대학생 여러분들도 취업이든 창업이든 특별함으로 목숨을 걸고 나서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함 행장은 그러나 다양한 위기 속에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며 도전정신으로 위기를 이겨내라고 주문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함 행장은 “모바일과 로봇 시대의 도래로 은행업이 앞으로 존재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특히 금융 쪽의 변화가 가장 빨라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면서도 “이런 변화로 인한 위기가 젊은이들에게는 도전의 기회가 될 것이고 또 다른 기회를 찾는 새로운 도전을 강하게 주문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