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18년 간 한샘인테리어 대리점을 운영해온 이동기(가명) 사장은 이르면 7월께 폐업할 예정이다. 매출감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지난해 매출이 30억원이 넘었는데도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했다.
가구산업의 양극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와중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은 비단 영세가구업체만이 아니다. 대형가구업체의 대리점들도 심각한 경영난에 내몰리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국내 가구시장 점유율 1위인 한샘 안팎에서는 대리점주들의 앓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방배동 한샘 본사에서는 최양하 한샘 회장과 전국 대리점주들과의 대화의 시간이 이틀에 걸쳐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대리점주들은 가구산업의 덩치는 커지고 있지만 대리점들의 영업환경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지목한 영업환경 악화의 시발점은 이케아도 아니고 현대리바트 같은 경쟁업체도 아닌 한샘 본사였다. 이들은 한샘 본사가 운영하는 대형 직영점이 자신들의 영업권을 침해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리점 사장은 “우리가 수집한 고객정보를 활용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우리들의 영업권역까지 본사 직영점의 판촉전단이 뿌려지는 것은 우리보고 장사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어떤 지역에서는 대리점이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데도 한샘 대리점 모집공고가 게시되는 등 대리점주들에 대한 배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샘의 지점정책을 보면 직영점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대리점은 줄어들고 있다. 2012년 5개였던 한샘플래그숍은 현재 8개로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한샘인테리어 대리점수는 82개에서 73개로 9개가 줄었다. 가구산업이 중흥기를 맞고 있지만 성장과실은 본사로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대형 대리점의 경영난은 심각하다. 한샘은 2013년부터 대리점의 대형화 전환을 본격적으로 꾀했는데 이때 대리점주들은 평균 7억~10억원 정도의 비용을 투자해야 했다. 현재 한샘인테리어의 대형대리점 숫자는 46개로 2012년(4개) 이후 10배 넘게 늘었다.
또 다른 한샘 대리점 사장은 “대형화 전환을 하지 않으면 계약을 끊겠다고 하는데 어떤 대리점주가 거부할 수 있겠느냐”며 “대부분이 은행대출을 받아 초기비용을 충당했는데 이 같은 영업환경 악화가 계속되면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가구산업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대리점주들이다. 대리점주들은 전국의 골목상권을 담당하며 대형가구업체 성장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한 대형대리점 사장은 “비록 대리점 간판을 달고 있지만 우리도 본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면서 “그러나 이제 와서 본사 직영점 장사가 잘되니 자신들이 독식하려는 것은 대리점주들을 토사구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샘 측은 “대리점 매장수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이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중소도시 매장이 없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샘측은 “현재 대리점과의 추가 동반 성장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앞으로 직매장보다는 대리점 연합 형태의 매장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