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액막이’ 직장인 수난기





‘해품달 신드롬’을 기억하실는지. 지난 2012년 방영됐던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최고 시청률 42.2%를 기록했을 만큼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특히 극 중 여주인공(한가인 분)인 허연우의 직업이 기억에 남는다. 허연우는 어렸을 때 기억을 잃은 채 살다가 액막이 무녀로 궁에 들어간다. 악몽에 시달리던 왕 이훤(김수현 분)과 극적인 재회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액막이 무녀는 왕의 액운을 온 몸으로 받아내 심적 안정과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본인의 건강은 해쳐가면서 윗사람의 컨디션 회복을 돕는 것이니 3D직업도 그런 3D직업이 있었을까 싶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밤낮 없이 격무에 시달리고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눈치 보는 이 시대 모든 직장인이 액막이 무녀 같은 존재 아닌가 싶다. 원치 않는 2차, 3차 술자리에 끌려가고 단지 상사의 기분전환을 위해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며 불합리한 처사도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니까. 김부장의 액막이 무녀가 정대리라면 김부장은 이상무의 액막이 무녀다. 위에서 아래로 화는 계속 아랫단으로 내려가는 구조다.


상사가 부하직원을 부하직원이 또 다른 부하직원에게 감정 실린 화풀이를 하는 ‘갈굼의 악순환’이 고착화된 이유는 뭘까. 남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신경함이 주된 이유 아닐까. 내 손은 조금만 베더라도 엄청나게 아파하지만 타인은 생사를 오가는 지경에 이르러도 다소 무감각해지는 공감능력 부족 말이다.

관련기사



바보같이 왜 참느냐,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느냐며 답답해 할 수도 있다, 제 3자의 이야기에는 ‘당당해져라’라고 쉽게 조언하겠지만 내 얘기가 됐을 때는 주저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나의 당당함이 남이 볼 때는 무례함 또는 되바라짐 정도로 해석될 위험이 꽤 높기 때문이다. 개념 없는 직장 후배 또는 동료의 에피소드는 대표적인 ‘안주거리’가 된다. 구설수가 생기고 평판에 문제가 생기니 액받이로 남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울한 결론이지만 ‘액받이 직장인 수난기’는 도무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건 아니잖아요’라며 반기를 들 액막이를 찾아보기도 힘들 뿐더러 ‘아니잖아요’ 하는 순간 정말 그 회사를 ‘아니 다니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읍소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상사가 왕도 아니다. 부하직원이 액막이 무녀도 아니다.’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당연하게 잊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그런 기회가 되는 글이었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래 본다.

김나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