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 팬들과 노르웨이 전차병이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다. 공통점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시야 확대. 한쪽에서는 경기 중계에, 지구 저편에서는 탱크 운전에 활용하는 점이 다를 뿐 기술 원리는 같다. KT 구단은 최근 경기 수원 홈경기에서 세계 최초로 360도 VR 프로야구 생중계를 진행하며 홈팬들에게 전용 고글(안경)을 선물했다.
외신을 종합하면 지구 건너편 노르웨이에서는 병사들이 지난해부터 비슷한 고글을 착용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병사들의 고글 착용 목적은 조종(운전). 60톤이 넘는 탱크의 밀폐 기동을 위해 노르웨이 육군은 VR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밀폐 기동이란 조종수와 전차장이 해치를 닫은 상태에서의 기동을 뜻한다.
노르웨이 전차 조종수는 이 기술 덕분에 해치를 닫고도 투명 유리로 만든 전차를 타고 조종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고 한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승용차 운전자에게 제공되는 후진 화면 정보가 훨씬 정교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노르웨이가 이 기술의 영감을 얻은 것은 미 공군의 F-35 전투기 조종사용 헬멧. VR 기술을 적용한 헬멧을 쓴 조종사가 고개를 숙이면 전투기 바닥 대신 발아래 허공의 풍경까지 확인할 수 있다. 조종사가 맨몸으로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 만드는 이 헬멧에 적용되는 VR 시스템은 가격이 비싸 약 40만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노르웨이 육군은 민간 기업과의 공동 기술 개발로 전차에 들어갈 VR 고글의 가격을 600달러선까지 낮췄다. 전투기용 고글보다 성능을 크게 낮춘 일반 군사용 고글도 약 3만5,000달러를 호가하는 시장 여건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가격이다.
노르웨이는 특히 전차 외부에 장착하는 시스템의 가격도 크게 끌어내렸다. 지금까지는 10만달러에 육박하는 외부 카메라와 고가의 운영 시스템을 노르웨이군은 민간용 어안(魚眼) 렌즈가 부착된 비디오카메라와 상용 시스템을 조합해 2,000달러로 완성할 계획이다. 노르웨이 육군은 이르면 올해 안에 이 시스템을 제식화할 방침이다.
노르웨이가 적은 비용으로 밀폐 기동이 가능한 VR 조종 시스템을 갖췄다면 우리 육군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밀폐 기동이 원칙인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 육군에서는 지휘관들이 인명사고를 우려해 개방 기동을 선호해왔다.
국내 기술 수준으로도 충분히 개발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전차 내에서 바깥을 360도 확인할 수 있어 각종 사고를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유사시 밀폐 기동으로 조종수나 전차장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