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눈이 온통 17일(현지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리는 주요 산유국의 생산량 동결 논의 회의에 쏠리고 있다. 시장의 기대대로 산유량 동결에 합의하면 국제유가가 더 오르겠지만 불발될 경우 급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향방에 일희일비하는 주요국 증시도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도하 회의를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산유량 동결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도 “이란이 동참하지 않더라도 동결 합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도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알렉산더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이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과 산유량 동결 문제를 논의해 이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산유국의 동결 가능성에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4.5% 급등한 배럴당 42.1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6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4.3% 상승한 44.69달러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말 이후 최고치다. 국제유가는 올 1월 사우디·러시아·베네수엘라 등이 산유량 동결을 논의할 것이라고 처음 밝힌 후 30%나 폭등했다.
프라이스퓨처그룹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이번 회의가 원유시장에 역사적인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미국 생산량 감소와 맞물려 유가가 새로운 상승 사이클에 들어가고 있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은 추가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 지난주 브렌트유 상승을 예상한 선물 옵션 계약 규모는 4억900만배럴로 사상 최고치였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국제유가 띄우기가 시급한 러시아 측이 동결합의설을 흘린 것은 처음이 아니고 사우디가 아직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찮다. 지난 1일에는 사우디의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부왕세자가 “이란 등 주요 산유국이 모두 동참하지 않으면 산유량을 동결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유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이란·캐나다·노르웨이 등이 동참하지 않을 경우 시장 점유율이 줄고 경쟁국만 수혜를 누리게 된다고 본다. 국제유가가 단기적으로 반등하더라도 다른 산유국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유가가 다시 하락할 게 뻔하다. 골드만삭스는 “동결에 합의한 나라만 패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공급과잉이 여전해 올 2ㆍ4분기 유가가 배럴당 35달러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시장 전망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마이클 위트너 원유 애널리스트는 “산유국 합의 가능성은 50대50”이라며 “결과에 따라 유가가 5달러 급등(현 유가 대비 12%)하거나 5달러 폭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결에 합의하더라도 ‘감산’이 아닌 만큼 추세적인 국제유가 회복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우디의 생산량은 사상 최고 수준이고 러시아도 옛소련 붕괴 이후 가장 많다. 이란은 하루 310만배럴인 생산량을 1년 내 400만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의 경우도 최근 셰일업계의 생산량이 줄었다지만 193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