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때와는 180도 달라진 정치지형은 박근혜 정부에 치명적이다. 당장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14일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를 준엄하게 심판했다”고 평가한 후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의 길로 대한민국 경제의 틀을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힘 빠진 여당 앞에 선 거대야당의 힘자랑인 셈이다. 국민의당이 “무조건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안별 협력을 시사했지만 반정부·반기업정서를 가진 의원들이 적지 않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어쩌면 19대 국회보다 더 한심한 20대 국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시급한 경제현안들이 여소야대 국회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노동개혁을 포함한 4대 구조개혁이 대표적이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절망에 빠진 청년들의 취업 기회를 넓히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 통과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현재도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는데 원내 제1당의 거대야당과 여소야대가 버티고 있는 20대 국회에서 가능할 리 없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법 역시 야당에서 ‘대기업 특혜법’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재를 뿌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기업 구조조정이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부진으로 조선·해운·철강업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은행 빚이나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부실기업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들을 내버려두면 금융권 위기로 확산할지도 모르며 이 경우 우리 경제가 공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조를 등에 업은 야당이 인력 감원을 놓아둘 리가 없다. 게다가 여당 대표가 총선을 이틀 앞두고 울산에 내려가 구조조정에 반대까지 한 마당이다. 정부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힘들어졌다”는 한숨 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가뜩이나 수출과 내수·투자부진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경제다. 처방전이 없다면 링거라도 맞아야 숨을 쉴 수 있을 수준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거대야당이 의석 수를 앞세워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는다면 청년들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수도, 빈 지갑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한숨 소리를 막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국회가 우리 경제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총선 결과는 경제를 살려 민생을 구하라는 국민의 아픈 회초리였다. 국민은 야당이 좋아서 표를 던져준 게 아니다. 파벌 싸움에 몰두해 민생을 외면했던 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을 선택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내 제1당이 됐다는 것, 교섭단체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도 크다는 의미다. 국민의 경고를 무시하면 다음 선거에서 웃는 자는 야당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