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분홍 나막신

-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분홍 나막신 신고 가는 널 보았다.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려다 입술이 굳었다. 너는 춤추는 듯 했으나 절름거렸다. 딛는 곳마다 꽃물인 줄 알았으나 핏물이었다. 너는 애써 웃음 짓지만 울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골목에 숨어 울었다. 평소 네 발꿈치를 한 번이라도 만져보았더라면, 네 복숭아뼈가 아직 살구씨만한 걸 알았더라면, 지푸라기라도 재어 나막신 장수에게 가져갔더라면. 아니, 나막신은 춤 출 때가 아니라 진창을 걸을 때 신는 거라고 알려주었더라면. 내가 근엄한 헛기침이 아니라 푸근한 트림이었더라면.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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