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약국 아마겟돈?





억만장자 스테파노 페시나 Stefano Pessina는 영리하게도 월그린 Walgreens의 자금을 활용해 체인사업체 월그린을 손에 넣었다. 이제 그는 드럭스토어 업계 지배권을 두고 시브이에스 헬스 CVS Health와 다투고 있다. 과연 이 뛰어난 협상가는 훌륭한 소매사업자가 될 수 있을까?




지난해 1월 9일, 새로 태어난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 Walgreens Boots Alliance(WBA)의 경영진이 나스닥 증권거래소에서 거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 중앙에는 CEO 그레그 와슨 Greg Wasson이 서 있었다. 그는 인디애나 출신으로 제약 사업부 인턴으로 시작, 미국 내 8,000개 이상 매장을 보유한 매출 760억 달러 규모의 드럭스토어 체인 월그린의 수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와슨은 월그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을 진두지휘 했다. 그의 바로 옆에는 월그린이 인수한 기업을 이끌어 온 이탈리아계 억만장자 스테파노 페시나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그는 1977년 지역 약품 공급업체로 출발한 후, 기민한 대형 계약을 통해 자신의 회사를 4,600개 매장과 400억 달러 규모를 지닌 얼라이언스 부츠 Alliance Boots로 키워낸 인물이다.

종이 울리고 천장에서 색종이 테이프가 펄럭이자,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았다. 드럭스토어 업계 사상 가장 과감한 최대 규모 합병의 공식적인 파트너가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 함께 오른 사람들은 많았어도 총책임자는 단 한 명이었다. 합병 완료 후 초거대 기업의 CEO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와슨(56)은 이미 한달 전 계약 마무리와 함께 사임을 발표한 상황이었다.

그건 놀라운 소식이었다. 페시나가 권한대행을 거쳐 정식 CEO가 될 것이란 사실은 상대적으로 놀랍지 않았다. 마치 뱀이 코끼리를 삼킨 것 같았다. 전임 월그린 경영진 다수의 말을 빌리면, 미국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스스로 돈을 내고 다른 회사에 인수된 꼴이었다.

현재 WBA 지분의 13% 가량을 보유한 페시나(74)는 탄탄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기업 삼키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월그린의 얼라이언스 부츠 인수합병이 마무리되기도 전인 지난해 10월, 페시나는 미국 내 3위 업체 라이트 에이드 Rite Aid를 172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추가적인 인수 계획까지 있다고 밝혔다. 최근 진행된 실적발표 자리에서 페시나는 “의료보건 분야의 비용 통제를 위해 시장의 수직적 통합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항상 파트너십에도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페시나의 대담함에 깜짝 놀랐다-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 하지만 다수의 야심찬 협상을 진행한 그에게 월그린 인수는 가장 최근의 거래일뿐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 70대 남성이 미국 소비자들이 탈취제와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 Lipitor를 구입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 이야기는 방대한 서사시와 같다. 중대한 협상이나 낭만에서부터 속임수와 배신의 쓰디쓴 비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다. 좀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로, 아직 그 결말을 알 수 없다.

페시나의 경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진정한 글로벌 보건의료사업체를 구축하기 위해 대기업 구조를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의 제약 도매사업과 드럭스토어 사업은 현재 각각 4개 대륙에 진출해있다. 하지만 페시나의 최근 행보는 자신의 기업을 일반적인 도매사업체에서 미국 소매 매장에 깊이 관여하는 사업체로 바꿔 놓았다. 수많은 외국계 기업이 자신감을 표하며 도전했던 미국 소매 매장 시장은 그들 스스로에게 무덤이 된 곳이었다(테스코 Tesco를 기억하는가? 브룩스 브라더스 Brooks Brothers를 인수한 마크스 앤드 스펜서 Marks & Spencer는? 세인스버리 Sainsbury‘s는? 모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페시나의 미국 소매사업 전략은 부츠 Boots( *역주: 영국의 최대 드럭스토어 체인점) 의 화려함을 월그린 매장의 효율성 및 편의성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WBA는 그 규모를 키우면서 가정용 구급상자 지배권을 두고 대기업 시브이에스 헬스와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페시나는 미국 최대 라이벌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될까?-아니면 인수합병의 대가인 그도 너무 큰 욕심을 부린걸까?

산 펠레그리노 San Pellegrino 생수 한 병. 일리노이 주 시카고 인근 디어필드 Deerfield WBA 본사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서 페시나 개인 물건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아이템이다. 최소한 가끔씩이나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유명 인사의 사진이나 제품 출시 기념품은 물론, 쌓인 서류파일도 없다. 아마도 페시나가 실제로는 모나코에 거주하며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형적인 CEO 활동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는 많은 매장을 방문하지도 않고 ‘이달의 우수사원’과 셀카를 찍지도 않는다. 특정한 재고관리코드(SKU)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소매사업자가 아니다”라고 인정한 후 “더 이상 도매사업자도 아니다. 팀을 구성하고 회사를 키우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평생의 파트너? - 페시나(왼쪽)은 수십 년 전 오르넬라 바라가 소유한 기업을 인수하며 ‘평생의 동반자’이자 동료 이사가 된 그녀를 만났다.평생의 파트너? - 페시나(왼쪽)은 수십 년 전 오르넬라 바라가 소유한 기업을 인수하며 ‘평생의 동반자’이자 동료 이사가 된 그녀를 만났다.


페시나는 사업가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이탈리아 명문 폴리테크니코 디 밀라노 Politecnico di Milano에 입학해 원자력 엔지니어나 학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의 격동 속에서 동료 학생들이 밀어붙인 방만해 보이는 평가 표준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는 “역겨웠다”고 말했다. 그는 중퇴 후 에이시 닐슨 A.C. Nielsen 이탈리아 지사의 통계부서 책임자로 취업했다. 닐슨에서 시카고 전근을 요구 받았을 땐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을 이미 다 배웠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그는 부친 오레스테 Oreste를 돕는 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나폴리에서 소규모 약품 도매업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아버지를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오레스테도 숫자에 밝은 아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페시나는 부친의 사업을 정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그는 부친의 지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도와주며 그들 업체로부터 소규모의 지분을 대가로 받기도 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분야에서 통합의 시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페시나는 인수합병의 매력에 빠져들었다-후에 인수하게 되는 소규모 약품 도매업체 리구리언 Ligurian의 매력적인 소유주 오르넬라 바라 Ornella Barra와도 1984년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은 혼인한 적이 없지만(페시나는 첫 아내와 수십 년 전부터 별거하고 있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다), ‘평생의 동반자’로 살고 있다. 바라는 첫 만남 후 페시나와 계속 일하면서 그가 소유하는 회사 모든 곳에서 고위직 이사를 맡아왔다. 지금은 월그린의 글로벌 도매사업 및 국제 소매사업 부문을 이끌고 있다. 바라는 “우리가 살아가며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의 상관이기 때문이었다. 의견이 다를 때도 있지만, 그가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곧 나의 결정이 된다”고 말했다.

페시나는 이탈리아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를 다음 표적으로 삼았다. 바라의 도움을 받은 그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약품 도매시장의 30%를 통합한 후 다른 나라로 확장해갔다. 그는 각 지역만의 개별적 특징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됐다. 부분적으론 상대적으로 더 작은 사업자들과 파트너십을 맺은-그리고 그들을 추월한-덕분이었다. 그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한 업체의 일정 지분을 매입해 수익 개선에 도움을 준 후 또 다른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그 사업체와 합병할 정도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치 바로 이전에 인수한 업체의 포장을 다 풀기도 전에 새로운 업체를 인수하는 것과 같았다.

페시나는 “결국은 일종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1,500건의 인수를 진행한 것으로 추산했다. WBA의 글로벌 브랜드 부문 수장으로 17년 째 부회장을 맡고 있는 켄 머피 Ken Murphy는 “그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객관성을 유지한다. 한 번도 감정적으로 휘말린 적이 없고, 한 번도 평정심을 잃은 적이 없다. 절대 계약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시나는 마치 ‘인수합병 중독자’처럼 보였지만 큰 틀의 전략 하나는 분명했다. 약품 유통사업이 통합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더욱 더 큰 표적을 목표로 삼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얼라이언스 산테 Alliance Sante‘ 라 불리던 그의 업체는 1997년에는 유럽 전역으로 세를 확장했다. 이 무렵 페시나는 자신의 도매사업을 통해 약국 비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영국 최대 약국 체인사업체 유니켐 UniChem 및 공개 기업 한 곳과 합병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이력에 소매업 분야 전문성과 주식 상장 경험이라는 경력을 추가하는 동시에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서로 다른 두 사내문화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듯 CEO에 올랐다(하지만 2004년 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페시나가 과감하게 노린 다음 표적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 받던 최대 드럭스토어 체인업체 부츠 Boots였다. 그는 수년 동안 3명의 CEO에게 매각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침내 2005년 당시 CEO였던 리처드 베이커 Richard Baker가 미끼를 물었다. 그렇게 두 기업의 합병으로 새롭게 얼라이언스 부츠가 탄생했다.

유럽 언론들은 삐죽삐죽한 백발 머리와 파란 눈을 보고 종종 페시나를 ‘은여우(silver fox)’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보면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최소한 계약이나 업계 미래에 관한 질문을 하기 전까진 그렇다. 일단 질문을 받으면 그의 눈은 넘치는 에너지로 번뜩이며 선명해지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전형적인 CEO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페시나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개인 자산을 다음 계약에 투자해왔다. 그의 재산이 현재 12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유 중 하나다. 페시나는 돈이 동기부여의 원천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면, 그보다 10배가 더 많아져도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페시나는 계속 무언가 만들어 가는 것을 원하고 있다.

유니켐 합병 직후, 페시나는 거대 사모펀드 KKR과 손을 잡았다. KKR의 보건의료 부문 수장 도미닉 머피 Dominic Murphy와 페시나는 부츠의 비공개기업 전환을 결정하면서 궁극적으론 여러 라이벌을 밀어내고 223억 달러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차입매수(leveraged buyout)로 자그마치 118억 달러의 부채가 생겼다. 2007년 여름에 마무리 된 이 거래를 통해 페시나는 큰 주목을 받았고-CEO 베이커가 갑자기 사의를 표명하며 다시 한 번 페시나에게 전권이 넘어갔다-각광받던 브랜드가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뒤따랐다.

월그린의 어제와 오늘: 1964년 당시 월그린 약국(왼쪽)과 현재의 모습. 약품은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 미국 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월그린의 어제와 오늘: 1964년 당시 월그린 약국(왼쪽)과 현재의 모습. 약품은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 미국 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하지만 페시나는 비관론자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부츠는 실패하지 않았다. 페시나와 KKR은 일자리와 비용을 줄였지만 투자는 감행했다. 매장을 새롭게 단장하는 한편, 미용 제품과 마진이 더 높은 제품에 집중해 차별화를 꾀했다. 얼라이언스 유통 사업부문도 화이자 Pfizer와 과감한 계약을 맺었다. 화이자 제품의 영국 내 독점 도매 사업체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약을 통해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이 드러나기 전까지, 엄청난 분노가 들끓었다.

페시나의 야망과 자신감은 계속 커지기만 했다. 그의 목표에는 변함이 없었다. 바로 글로벌 보건 의료업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라이언스 부츠는 미국을 빼곤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월그린의 CEO 와슨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2009년 개혁의 사명을 띠고 최고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체인사업체는 자체성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금융위기로 인해 소비자 지출이 줄어들고 있었다. 인터넷 시대에 가내수공업 같은 월그린의 사업방식은 구식으로 보였다.

그건 과거 오랫동안 통하던 방식이었다. 찰스 월그린 Charles Walgreen과 그의 후손들은 혁신과 훌륭한 고객경험 제공을 앞세워 대기업을 일굴 수 있었다. 월그린은 최적의 장소를 선택하고 최고의 약사와 점원을 고용해 이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며 내부 승진을 실시했다. 1922년 맥아 밀크 셰이크를 개발하고 1달러 어치를 사면 무료 금붕어를 나눠주는 등 초기부터 고객만족 극대화에 힘을 쏟았다.

그 후-대략 1975년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월그린은 가속도를 내며 경쟁업체들을 물리치고 최대 소매업체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 주식으로도 각광 받았다. 기업의 윤리성, 겸손함, 사람 중심의 사업 접근법은 물론, 뛰어난 실적-주식 시장보다 7배나 높은 월등한 성과를 올렸다-덕분에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에서 칭송을 받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월그린의 CEO였던 제프 레인 Jeff Rein은 “나는 월그린을 항상 부모 같은 기업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와슨은 레인의 후임 CEO였다. 그는 급격한 매장 확장에 제동을 걸었지만, 2010년 뉴욕에 기반을 둔 두에인 리드 Duane Reade 체인을 비롯해 몇몇 기업을 인수했다. 그는 비용을 절감하고 유능한 외부인사 몇 명도 영입했다.

또 월그린의 영향력을 앞세워 제약혜택관리업체(PBM)에 맞서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PBM의 소속 직원은 많은 약품을 구매한다). 여러 PBM은 체인업체들에 대한 환급 비율을 줄이고 있던 중이었다.

와슨은 시범적으로 초거대 PBM 중 하나였던 익스프레스 스크립트 Express Scripts에 맞서기로 결정했다. 고객들이 PBM 한 곳 보단 자신들이 이용하는 약국에 더 높은 충성도를 보일 것이라고 믿은 그는 2011년 익스프레스 스크립트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고객들은 빠져나갔고 월그린의 수익은 급락했다. 펨브로크 컨설팅 Pembroke Consulting의 애덤 페인 Adam Fein은 “그들은 총잡이를 상대로 칼을 들었다. 엄청난 계산 착오였다. 수백 만 명의 고객들이 빠져 나갔고 다시는 월그린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지적했다.

와슨은 부츠 합병계약에 대해 페시나와 이미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해외 성장이 갑자기 더욱 시급해졌다. 페시나가 좋은 표적이라는 건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와슨은 “우린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월그린은 완전한 합병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페시나는 2012년 월그린이 얼라이언스 부츠 지분의 45%를 인수하는 복잡한 2단계 과정을 제안했다. 3년 후 양측이 만족하는 경우에 나머지를 인수하자는 것이었다.


2012년 7월-인수합병 계약 1단계가 발표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마무리되진 않은 상태였다-월그린은 패배를 인정하고, 익스프레스 스크립트와의 사업을 재개했다. 이 ‘정전(truce)’에 기뻐한 투자자들은 월그린의 주가를 12% 올려놓았다. 그러나 가장 큰 이익을 거둔 쪽은 월그린으로부터 (정해진 금액이 아니라) 정해진 지분을 받기로 했던 페시나와 KKR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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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관계자 모두의 증언에 따르면, 페시나는 협상에서 상대방을 압도했다. 바클레이즈의 애널리스트 메러디스 애들러 Meredith Adler는 “여전히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협상에 임한 건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들(월그린)은 주식 가치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나는 ‘KKR이나 페시나가 이 거래의 양측 당사자 모두와 협상을 벌였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고 주장했다(WBA 대변인은 정해진 지분 덕분에 “양측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켄 머피는 “어른이 아이의 팔을 꺾은 셈이었다”고 말했다.

두 기업-당시 ‘약혼’ 상태로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은 ‘혼인’의 실현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팀들이 부츠 본사가 위치한 영국 노팅엄 Nottingham과 디어필드 사이를 오가며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 했다. 부츠 쪽에서 디어필드를 방문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였다. 와슨은 오랫동안 월그린의 소매사업 부문을 개선하고 싶어했고(약품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에겐 사업의 절반 이상이 소매부문인 부츠가 이상적인 실험실로 보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알렉스 고어레이 Alex Gourlay-평생 부츠에서 일했다-를 미국 월그린에 투입해 운영을 돕도록 했다.

그후 커다란 오류로 인해 힘의 균형이 부츠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졌다. 월그린은 복제약품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 예측했는데, 실제로는 상승하고 있었다. 2014년 여름, 월그린은 급작스럽게 2016년 예상 수익을 3분의 1만큼 하향 조정했다. 월그린의 주가는 하루 만에 14% 떨어졌다. 애들러는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월그린의 상황은 나빠져만 갔다. 익명의 이사 및 실무진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 재앙을 최고재무책임자(CFO) 웨이드 미클롱 Wade Miquelon과 또 한 명의 이사 탓으로 돌렸다. 극찬을 받으며 와슨에게 신임을 얻었던 미클롱이 은퇴 계획에 따라 막 사임했던 때였다. 그는 잘못 된 예측 때문에 사임했다는 분위기가 퍼지자 크게 분노했다.

미클롱은 월그린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의 소송 내용 중에는 페시나와 와슨이 월그린의 예상 수익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도록 압박했다는 부분이 들어 있었다(9개 중 7개가 기각됐으나, 여전히 소송은 진행 중이다. 미클롱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와슨이 미클롱을 칭찬하면서 언젠가 CEO 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 이메일 또한 소송 내용에 포함되었다. 이메일 중에는 ‘어떻게든 6을 달성합시다’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미클롱은 이것이 주당순이익(EPS)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미클롱이 이의를 제기하자 와슨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6이어야 한다. 방법을 찾을 것이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현재 WBA는 2016년 주당순이익으로 4.30~4.55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소송 과정에서 월그린은 ‘더욱 과감한 비용 절감이나 시너지 효과, 주식환매 등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CEO가 CFO에게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페시나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책임지던 시기가 아니다. 그랬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권력: 그레그 와슨(왼쪽)은 월그린 CEO직을 사임했다. 월그린의 전임 CFO 웨이드 미클롱은 명예훼손으로 월그린을 고소했다.과거의 권력: 그레그 와슨(왼쪽)은 월그린 CEO직을 사임했다. 월그린의 전임 CFO 웨이드 미클롱은 명예훼손으로 월그린을 고소했다.


월그린과 부츠는 2단계를 진행해 예정보다 빨리 합병을 완료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주객전도의 합병(inversion)을 이사회가 반대하자 와슨에 대한 신뢰는 다시 한 번 타격을 입었다. 합병내용을 보면 월그린이 본사를 스위스로 옮길 수도 있었고, 세후 이익을 약 6억 달러 가량 늘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기가 나빴다. 마침 주객전도의 합병이 정치 이슈로 부상했고, 오바마 대통령 등 많은 이들이 이를 비난했다. 맥도널드의 CEO를 역임한 월그린 회장 짐 스키너 Jim Skinner는 계약이 두 단계로 이뤄져 있어 국세청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와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2014년 11월 24일까지만 해도 월그린의 대리인은 연말 계약이 마무리되면 그가 회사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페시나는 와슨이 합병 기업의 CEO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임 발표에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페시나는 “6개월 전이라면 그레그 와슨이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어려워졌다. 주주들은 그와 그의 팀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말했다.

페시나가 회사 주식의 13%를 좌지우지하는 주주라는 사실, 그리고 KKR이라는 동맹과 행동주의 펀드 자나 파트너스 JANA Partners가 각각 4.7%와 1.1%의 지분을 쥐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발언은 상당히 완곡하면서도 수동적으로 들린다. 페시나는 “(와슨의 사임을 부추긴 것은) 우리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나는 그레그를 최대한 돕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와슨은 당시 상황을 다르게 회상한다. 그는 “사임하기로 한 건 나의 결정”이었다며 “시간을 두고 과거를 곱씹어 보았다. 나는 최대 규모의 합병을 이미 이뤄냈다. 그리고 합병을 마무리하는 데 또 다시 3~5년이 걸릴 상황이었다. 나는 6년 간 CEO로 일했기 때문에 물러 날 때가 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주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합병이 최종 마무리됐을 때, KKR은 여전히 상당 지분을 유지하면서도 54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페시나는 1억 4,100만주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 부상했다. 이 주식은 현재 113억 달러에 가까운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백방으로 CEO 영입 작업을 벌인 후에, 페시나가 CEO 대행에서 정식 CEO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CEO직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운이 없어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며 “이 일을 할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인수합병 거래를 할 수 있을 때, 디어필드에서 눈 내린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내가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현재 고위 운영진에는 예전 부츠 이사진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이사회 또한 재편돼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사가 KKR과 페시나, 혹은 행동주의 투자펀드 자나 파트너스에 의해 임명됐다. 자나 파트너스는 고작 지분 1% 인수로 이사 2명의 자리를 확보했고, 3번째 이사에 대한 거부권도 획득할 수 있었다. 페시나는 WBA가 월그린 측으로부터 곧 더 많은 대표권을 넘겨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는 점은 모든 사람이 그

를 믿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모든 협상 타결과 드라마의 와중에서도, 광범위한 지역에 포진한 자부심 강한 대기업 두 곳을 통합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아 있다. 다행인 점은 부츠와 월그린이 일정 부분에선 대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사촌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두 기업 모두 역사가 깊고(부츠는 166년 전, 월그린은 115년 전에 창업했다), 사명 또한 모두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며 수십 년 동안 가업으로 운영되어 왔다. 가부장적인 문화도 공통점이다. 무엇보다 두 기업은 품질, 서비스, 높은 신용도를 통해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상당한 차이점도 존재한다(이 때문에 몇몇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인수합병이 결국 페시나의 실패작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선 부츠 매장은 고급 상점 같은 느낌을 준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2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더비 Derby에 위치한 부츠 매장은 미국 백화점의 1층과 유사하다. 상당한 공간을 샤넬 Chanel과 클래린스 Clarins 같은 고급 화장품 브랜드나 그것보다 조금 저렴한 맥스 팩터 Max Factor 등에 할애하고 있다. 상담사들이 복도를 거닐며 고객들이 새로운 립스틱이나 토너 제품, 특히 부츠의 유명자체 브랜드 넘버 세븐 No7 등을 테스트하도록 돕고 있다. 런던 지점에선 상담사 한 명이 분광계를 꺼내 필자의 피부색을 확인하고, 보완에 도움이 될 화장품 색상-‘웜 파프리카 warm paprika’ 립스틱을 포함한다-을 추천해준다. 부츠 매장은 화장품 전문매장 세포라 Sephora에 보건의료 부문을 추가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월그린의 경우 매장 자체는 문제가 없다. 깔끔하고 밝다. 문제는 미국인이 여러 세대에 걸쳐 ‘편리함’ 때문에 월그린 매장을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가능한 한 빨리 우유 1리터나 화장지, 혹은 처방약을 구입하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월그린이다. 다시 말해 고급 화장품을 시험해보기 위해 머무는 곳이 아니라 효율이 가장 중요한 매장이란 얘기다.

이 차이가 장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시나는 이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주장한다. 그는 부츠의 장점 일부를 월그린에 주입하고 싶어한다. 2013년 월그린에 파견된 고어레이가 그 임무를 맡았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16세 때 글래스고 Glasgow 지역 부츠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월그린에 오기 전까지 체인 전체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는 페시나에겐 부족한 ‘매장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고어레이는 500개 가량의 월그린 매장을 직접방문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향후 수 년간의 계획을 색깔로 표시해둔 지도를 가리키며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피닉스 지역에서 진행 한 넘버 세븐 시범 사업 결과에 확신을 얻은 월그린은 올 후반기에 이 사업을 2,000개 매장으로 확장시킬 예정이다. 고어레이는 이런 제품들도 월그린 고객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국에서) 소매사업을 할 때 우린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했다”고 말했다(미국 중부에서 2년을 보냈지만, 그의 스코틀랜드 억양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린 미국에서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넘버 세븐과 소프 앤드 글로리 Soap & Glory (별도 브랜드) 사업을 시험해봤다. 이들은 과도하게 고급스러운 제품이 아니다.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다. 편리함과 함께 미용 상담사도 제공한다. ‘매스티지 masstige’ 제품들이지만 품질 또한 뛰어나다.”부츠 팀은 겸손한 인상을 잃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페시나는 “절대 부츠 브랜드를 이곳에 들여오지 않을 것”이라며 “제품과 아이디어를 들여오긴 하겠지만, 부츠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세포라를 비롯해 울타 Ulta와 시브이에스 같은 다른 미용 브랜드들이 많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월그린을 개선하는 노력에는 많은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그 전에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미국 중산층의 비율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에, 미국 소매사업 시장에서 중간가격 분야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온라인 소매사업이라는 불안요소도 존재한다. 월그린은 소매사업 측면에서 훌륭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 때 매장 방문 고객보다 온라인 제품 구입 고객 수가 처음으로 더 많아진 상황에서, 그런 장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실제로 월그린은 일부 디지털 계획에서 경쟁업체보다 뒤떨어져왔다).

페시나가 계속 집중해야 할만큼 월그린에는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그는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가 172억 달러에 라이트 에이드(그는 발표하는 자리에서 ‘알(r)’ 발음을 많이 굴리고 음절을 늘려 ‘르와이이트 에이이이드 Rrrrrrriiiiite Aiiiiide’라고 말했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규모의 장점은 분명하지만, 이미 비대해진 기업이 추가 인수합병을 진행하며 또 다른 문화를(그리고 추가적인 부채를) 함께 떠안는 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반독점조항으로 인해 월그린은 예상했던 1,000개보다 더 많은 수의 매장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또 약품 분야가 거대한 변화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WBA는 관련 사업을 계속 개선해야만 한다. 시브이에스와 월그린 모두 지속적인 약품비용 상승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자체 PBM인 케어마크 Caremark를 보유한 시브이에스 측이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더 쉽다.

시브이에스와 월그린은 서로 정반대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월그린이 소비자 제품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시브이에스는 약품 및 진료소에 집중하고 있다. 시브이에스는 건강을 사업 개념 통합의 중심에 두고 자체 명칭에 ‘건강(Health)’을 덧붙이는 한편, 담배 판매 중단이라는 과감한 결정 등을 통해 거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경쟁업체의 한 CEO는 “시브이에스는 진정으로 흔들림 없이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브랜드를 구축해왔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페시나는 자신의 장기로 대응해왔다. 더 많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이미 도매업체 아메리소스버진 AmerisourceBergen과의 거래를 통해 약품 확보 비용을 절감했다. WBA는 한 때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현재는 곤란한 상황에 놓인 제약사 밸리언트 Valeant로부터 (도매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약품을 구입할 예정이다. 다른 업체와도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한다면, 페시나 덕분에 월그린은 수십 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WBA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부채 규모는 142억 달러이며 라이트 에이드 인수가 승인되면 최대 312억 달러-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EBITDA) 3년치보다 많은 액수다-의 부채는 떠안게 된다. WBA의 투자 능력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모다. 또 당장 성공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기업들이 합병되고 재편되기 때문에 현재의 결과를 과거와 비교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울프 리서치 Wolfe Research의 스콧 머시킨 Scott Mushkin은 “그들은 정형화된 숫자를 제공하지 않는다. 매년 하락하는 중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WBA는 탄탄한 주가 실적을 기록해 왔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아직 페시나를 믿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페시나는 궁극적으로 수직적 통합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업계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년 후에는 미국의 모든 유통이 변할 것이다. 우리는 약품, 그리고 더 넓게는 제품의 유통 비용을 과감하게 낮춰야만 한다. 보건 의료 비용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다.”

페시나가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소매사업의 본질을 무시할 순 없다. 바로 매일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2008년 월그린의 CFO를 역임했던 빌 루돌프슨 Bill Rudolphsen은 “세계화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다른 부분도 존재한다. 이건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그린 가문의 3대 초상화가 벽에 걸린 이사회실에 앉아 있을 때 그들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테이블 한 쪽 끝에 앉아 있으면 그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쪽 끝에 앉아도 그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문화의 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항상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페시나는 이러한 전통에 많이 얽매이지 않는 편이다. 그는 “변화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룰 수 있으며, 우리는 항상 최전선에 있었다. 우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옳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존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월그린을 차지했다. 라이트 에이드가 다음 표적이다. 라이트 에이드 다음으로 거래할 대상을 찾을 수 있다면 페시나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훨씬 더욱 생생하게 느낄 것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BY JENNIFER REINGOLD with MARTY JONES

안재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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