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운, 복면, 십자가. 미국 백인 우월 단체 쿠클럭스클랜(Ku Klux Klan, KKK)의 상징이다. 쿠클럭스클랜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인 키클로스(kyklos)와 스코틀랜드 게일어 클랜(clan)에서 유래했다. 키클로스는 원, 클랜은 집단을 뜻한다.
KKK단은 1865년 만들어졌다. 비밀 사교 집단으로 시작했으나 세가 급성장하며 반정부 성격을 띠는 불법 폭력 단체로 변질됐다. 당시 미국 연방 정부는 남부 지역 재건 활동을 펼치려 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를 높이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백인우월주의를 기반으로 KKK는 노예 해방과 같은 연방 정부의 재건 활동을 원위치로 돌리려 했다.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남북전쟁 시 남부 연합 장군이던 나산 베드퍼드 포레스트가 쿠클럭스클랜 초대 우두머리를 지냈다. 과도한 폭력으로 KKK단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1869년 그는 단체 해체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KKK단의 테러는 계속됐다. 상대적으로 인종이 균형적인 지역에서도 KKK단의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흑인과 그 지지자들, 백인 공화주의자에 테러를 자행했다. 협박, 재산 파괴는 물론 폭행과 살인까지 저질렀다. 일부 남부 주에서 공화주의자들은 KKK단을 깨부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1871년 4월 20일에는 ‘쿠클럭스법안(Ku Klux Act)’이라고도 알려진 ‘제3세력 법안(the Third Force Act)’이 통과됐다. KKK단 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법안이다. 당시 의회는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 대통령에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9개 카운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테러 조직을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수 천명이 구속됐다. 1882년 쿠클럭스법안이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KKK단은 점점 약해졌고 국가 재건도 완성에 가까워졌다.
KKK단은 20세기 들어서도 몇 가지 굵직한 사건을 일으켰다. 1910~1920년대 이주민에 대한 테러, 1950~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저항 등이다.
/김진희인턴기자 jh694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