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호주 법조계 "법률시장 개방 앞당겨달라" 공세

7월 법률시장 순차 전면개방 앞두고 '총성없는 전쟁'

법무부 "형평성 고려 신중검토" 입장

美·英은 외국법 자문사 등록 잇따라

국내로펌과 '짝짓기' 경쟁 본격화



오는 7월부터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합작법인 설립이 허용되는 등 국내 법률시장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호주 변호사업계가 우리 정부에 “개방 시기를 앞당겨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합작법인 설립을 위해 외국법 자문사 등록을 서두르고 있는 영국, 미국에 이어 호주까지 참전 의지를 밝히면서 앞으로 국내 법무법인(로펌)을 파트너로 잡기 위한 이들 국가 간 총성 없는 전쟁이 한층 본격화할 전망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호주변호사협회는 최근 법무부에 “오는 2019년까지 순차적으로 예정된 국내 법률시장 개방 시기를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외국 로펌업계가 국내 법률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합작비율 등 세부사항에 대해 조정을 요구한 적은 있으나 개방 시기 자체를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법무부는 미국, EU 등 다른 국가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는 만큼 호주의 요청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법률시장 개방은 앞서 EU, 미국, 호주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이후 개정된 외국법자문사법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된다. 원 자격국법 등 자문, 국내외 법 혼재 사건 공동 처리, 합작 로펌 설립 등이 차례대로 허용하는 총 3단계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우리나라와 FTA를 맺은 EU, 미국은 오는 7월과 내년 3월 최종 3단계에 접어들지만 FTA 체결 시기가 2014년인 호주는 오는 2019년에야 합작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호주가 현지 변호사 단체를 앞세워 조기 진출에 나서는 방법을 택했다면 미국, 영국 등은 합작법인 설립의 필수조건인 외국법 자문사 승인·등록에서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가 올 들어 지난 8일까지 승인한 외국법 자문사 수는 21명으로 이 가운데 80% 가량인 18명이 미국과 영국을 원자격국으로 두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법무부에서 승인한 외국법 자문사(115명) 가운데 91명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영국도 20명으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외국법 자문사는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뜻한다. 외국계 로펌은 ‘외국법자문사법’에 따라 국내 파트너사(로펌)와 짝을 이뤄 합작법인을 설립하려면 반드시 2명 이상의 선임 외국법 자문사를 둬야 한다. 말 그대로 외국법 자문사를 확보하는 게 앞으로 합작법인을 세우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법무부 승인을 받은 외국법 자문사는 2012년 34명, 2013년 30명에서 2014년 18명으로 줄어드는 등 그동안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12명으로 바닥을 친 뒤 올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바야흐로 ‘외국법 자문사 100명 시대’를 활짝 열었다. 2012년 6월 스코틀랜드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가 국내 ‘1호’ 외국법 자문사로 이름을 올린 지 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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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법 자문사 확보에 속도를 내고 현지 변호사 단체가 우리 정부에 조기 개방을 요청하는 등 국내 법률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는 세계 각지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국내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해외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현지 자문 등 우리 기업들의 법률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자 한발 앞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법률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내 기업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가교이자 소통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에 힘을 쏟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한 로펌 관계자는 “해외 로펌들이 국내 파트너사와 손잡고 합작법인을 설립하면 국내 기업들에 한층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데다 해외 자문 등 수임 때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연락사무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 영국계 로펌이 2014년 연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고 알려지면서 미국 등 해외 로펌들의 시각이 ‘국내 법률시장에 아직 기회가 있다’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한국 진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2012년 7월 국내에 첫발을 디딘 클리퍼드 챈스(Clifford Chance)는 지난해 말 ‘2016년 퇴직공직자 취업 제한 대상기관’으로 지정됐다. 공직자윤리법에서는 매출액이 100억 원을 넘는 로펌은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한다. 올해 취업 제한 대상은 2015년 국세청에 신고된 매출액을 기준으로 정한다는 점에서 클리퍼드 챈스는 2014년 매출이 100억 원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연 매출 100억 원 돌파는 2011년 7월 법률시장 개방 1년 후부터 한국에 사무소를 내고 영업활동을 해 온 26개 외국계 로펌 가운데 처음이다. 또 다른 국내 로펌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영국, 호주 등 로펌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 합작법인 설립이 줄을 이을 수 있다”며 “다만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국내 대형로펌보다는 중·소형 로펌을 중심으로 외국계 로펌과의 합작법인 설립이 주를 이룰 전망”이라고 말했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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