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를 다져나가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와 시민들이 한국의 반일감정을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일본 학계의 조언이 나왔다.
26일 서울 중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플래넘 2016’에 참석한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학 교수는 “일본은 아직 한국인들이 지닌 일본에 대한 근본적인 악감정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감정은 변수가 아닌 역사가 만든 고정적 결과이므로 이를 인식하되 반일 감정 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본인으로서 한일관계를 바라봤을 때 양국은 역사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균형을 이어나갈 수도, 깨질 수도 있는 관계”라며 “다만 반일감정이 한일 관계의 모든 측면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에 일본 정부와 시민사회는 양국 관계가 긍정적인 발전을 이뤘던 1990년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소에야 교수는 1980년대부터 동북아 국제관계를 연구한 중도 성향의 국제정치학자로, 전후 일본의 헌법과 외교정책을 분석한 저서 ‘일본의 미들파워 외교’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이다.
소에야 교수가 한일관계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끈 사례로 꼽은 것은 1992년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가 방한한 후 일본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일이다. 이후 고노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 등으로 이어진 일본 정부의 발표도 2000년대 초반의 한류와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해결을 약속한 것이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에야 교수는 “만약 자민당이 아닌 민진당(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러한 (위안부 합의) 결과를 끌어냈다면 일본 내 민족주의자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수성향이 짙은 아베 총리이기에 반대 세력을 설득할 수 있었고, 이로써 양국은 새로운 단계로 진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관계를 포함한 아베 정권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는 그는 “만족스럽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우방이자 강대국인 미국에 의존한 외교노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아베 총리 역시 역대 총리들과 다를 바 없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린 한편, 헌법 9조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안전보장법제(안보법제)는 외교 전략상 다양한 선택지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호평했다. 다만 “아베 총리가 안보법제 통과 과정에서 자국민이나 다른 나라를 상대로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하지 못한 점은 문제가 있었다”며 “(반대하는 이들을 누르고)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이 매우 지저분했다”고 비난했다.
앞서 일본 국회는 지난해 9월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 등을 이유로 집단적 자위권 허용을 주 내용으로 하는 안보법제를 처리했다. 이 법은 지난 3월 29일 공식 발효됐다.
한편 내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여부에 대해 소에야 교수는 “방문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반발이 오바마 대통령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겠지만 한미일 3국의 동맹 축이 이 방문으로 어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