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달린 불도저’로 불린 백상 장기영 선생이지만 정작 그의 곁에서 젊은 날을 보낸 전직 언론인과 관료들은 한결같이 그의 인간미를 떠올렸다. 백상과 일하다 다른 언론사로 떠난 기자가 그 회사를 그만두자 백상이 먼저 연락해 돌아오라고 했던 일화는 28일 백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다시 회자됐다. 서울경제신문 사장을 지낸 권혁승 백교문학회장은 “1975년 언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정부에 의해 강제 해고될 때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 기자들은 백상이 ‘반정부 성향의 기자를 껴안아야 한다’는 편지를 권력 실세에게 보낸 덕에 해고되지 않았다”면서 “대신 신문사는 금융권에 대출이 막히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봉두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왕초(백상의 또 다른 별명)한테 기합 받던 이야기 좀 해보자”며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이날 봉 교수가 펼쳐놓은 백상의 일화. “1965년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의 월남 파병과 관련해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내가 워싱턴 특파원이었는데 정상회담이 끝나고 존슨 대통령이 30분 늦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에 14개 조항에 합의하면서 미스터 장이 박 대통령을 대신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존슨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하자마자 백상은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 이렇게 말하더라. ‘봉두완, 린든 존슨이 말하는 거 들었지. 신문에 꼭 실어’ 경제부총리를 하는 와중에도 본인이 편집국장인 걸로 알고 있던 것”.
이 자리에는 원로 언론인뿐 아니라 백상을 기억하는 정치·경제·문화·체육계 인사들이 모였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와 정세균 더 민주당 의원, 박지원 국민의 당 원내대표가 한자리에 모이자 카메라 플래시가 쉴새 없이 터졌다. 김 전 대표는 축사도 마다하고 침묵을 지켰지만 한때 여야 원내대표를 함께 지낸 박 원내대표와 환담을 주고받았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은 “1967년 1월1일로 경제기획원 신임 사무관으로 발령 받을 때 장기영 경제부총리가 임명장을 줬다”면서 “나는 까마득한 수습사무관이었으니 같이 일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고의 경제부총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연합회장도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 직접 모신 적은 없지만 한국 경제가 근대화하는 데 신화적인 업적을 남긴 선배라는 점은 잘 안다”고 했다. /임세원·구경우·김상훈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