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1·4분기 경제성장률이 0.5%로 2년 만에 가장 낮고 금리 인상도 지연되면서 달러 약세, 원화 강세 양상이 만들어졌다. 우리 외환당국 입장에서는 두 자릿수로 하락하는 수출을 방어하기 위해 고환율(원화 약세) 혹은 일정 수준의 높은 환율을 유지해야 하지만 환율조작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 여력이 제한적이고 추세적인 원화 강세가 시작됐다는 인식이 국제금융시장에 퍼지면 환투기세력이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학계, 연구소 관계자들은 한국의 경상흑자가 국제유가 하락을 감안해도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그들은 경상흑자가 완화될 수 있는 적절한 원·달러 환율로 800원대 후반에서 900원대 초반을 제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환율은 달러당 1,140원 내외다.
실제 미 재무부의 보고서를 뜯어보면 표면적으로 한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했을 뿐이지 곳곳에 날이 서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3월까지 총 260억달러의 외환을 팔아 원화 가치 하락을 막았다(환율 상승 억제)”고 호평하면서도 말미에는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수년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외환시장 개입을 하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야 자본이 과도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조절하기 위해 환율 상승을 억제하고 나섰지만 역사적으로는 환율조작국 요건이 될 만큼 개입을 해왔으므로 주의하라는 의미다. 한국 경제가 지나치게 해외 수요에 의존해 글로벌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경고도 내놓았다. 보고서는 “한국·독일·대만 등의 막대하고 지속적인 경상흑자로 세계 경제가 고통을 받았고(suffered) 시정되지 않는다면 고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내수를 활성화할 조치도 촉구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내수 지지를 위한 추가 조치에 나서야 한다”며 “중기적인 원화가치 상승은 한국이 지금의 지나친 수출 의존에서 경제 기조를 선회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독일 등에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는 적극적으로 재정확장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것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의 한 전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국제유가 하락 때문이든 불황형 흑자 탓이든 경상흑자부터 줄여야 미국의 타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미국으로부터 향후 들여올 군수품 등을 미리 수입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늘어나 무역, 경상흑자 폭이 줄어든다. 또 한국이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미국의 여론도 잠재울 수 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