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은 원어로 심포니(Symphony)라고 한다. 일정한 형식과 길이를 갖춘 관현악곡을 이르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때에 따라 그보다 적거나 많기도 하다.
교향곡을 가장 많이 작곡한 이는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1732~1809)이다.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며 이른바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했다. 당시 교향곡은 왕족·귀족들의 여흥 음악 정도로만 사용됐는데, 하이든은 항상 새로운 곡을 원하는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조금씩 다른 형식미만을 강조한 다작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모차르트(1756~1791)도 꽤 많은 교향곡을 남겼다. 총 41개의 작품을 남겼는데 불후의 명작이라 평가되는 곡들이 여러 편 있다. 하이든이 완성한 형식에 모차르트의 뛰어난 음악성이 들어가면서 교향곡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향곡을 지금의 위치, 즉 관현악곡 가운데 가장 웅장하면서도 중요한 위치로 끌어올린 작곡가는 누구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베토벤(1770~1827)이다. 베토벤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소품형식의 교향곡을 많이 작곡한 것과는 달리 형식과 길이를 일정 수준 이상의 큰 규모로 만들고 무엇보다 자신의 깊이 있는 철학을 담아내기에 이른다. 이후로 교향곡 작곡에는 작곡가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하이든·모차르트와 같이 다작을 발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베토벤은 평생을 통해 오로지 9개의 교향곡만을 남겼는데 베토벤뿐만 아니라 아홉 번째 교향곡의 완성 후나 그 작업 도중 세상을 뜬 작곡가가 여럿이다. 특히 슈베르트는 열 번째 교향곡을 스케치하다가 불과 31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때부터 9번 교향곡의 징크스 또는 저주라는 말이 생겨난다. 이 외에도 안톤 브루크너, 안토닌 드보르자크, 구스타프 말러, 랠프 본 윌리엄스 등이 9번 교향곡 작곡 후 죽었다. 구스타프 말러는 저주를 피하려 아홉 번째 작품에 번호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는 기지를 발휘했고 다음 작품에야 안심하고 9번 교향곡이라 번호를 매겼으나 그러한 그도 10번 교향곡 작곡 도중 사망했다. 이쯤 되면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러시아 근대음악의 발전에 기여했던 작곡가 알렉산드로 글라주노프(1865~1936)는 8번 교향곡까지만 제대로 쓰고 9번은 1악장만을 쓰다가 죽는 날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징크스를 이겨낸 작곡가들도 존재한다. 요아힘 러프, 다리우스 미요, 헹크 바딩즈, 알란 페터손 그리고 우리나라의 작곡가 나운영 등이다. (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