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한은 적극 역할론’도 구조조정의 전제조건일 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버리고 ‘적극 역할론’으로 선회했다. 이 총재는 2일 집행간부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을 위한) 한은의 역할수행 방안에 대해 철저히 점검해주기 바란다”고도 말했다. “지금 금융시장 상황을 볼 때 한은이 나설 상황이 아니다” “중앙은행 본연의 기본 원칙 안에서 하겠다”던 기존 태도와는 분명 다른 뉘앙스다. 정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압박하고 나서자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한은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는 평가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기업이 고꾸라지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쏟아질 위기에 처해 있다. 모두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에 구조조정 방법을 놓고 정부와 한은이 싸우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백척간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안간힘을 쓰는데 한은도 국책은행에 대한 출자든 채권 인수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한국판 양적 완화는 말만 그럴싸할 뿐 사실은 돈을 찍어내 기업 구조조정에 나선 특정 금융기관의 자본확충을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쟁력을 상실한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위한 증세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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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변해야 한다. 환율을 수출의 최고 무기로 삼으려는 낡은 전략, 조금만 어려워도 투자를 줄이는 소극성, 정부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의존성 등 과거에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 빈 공간은 위기 때 연구개발을 더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와 시장을 개척하는 도전의식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기업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은의 ‘적극 역할론’은 또 다른 대마불사만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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