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영웅서 천덕꾸러기로...日 샐러리맨의 몰락

세계 2위 경제대국 이끈 일등공신 불구

애사심·엄격한 연공서열 등 특유의 문화

회계부정 등 기업비리의 원인으로 지목

창의성 갉아먹는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

흰 와이셔츠, 불철주야 회사에 충성하는 애사심, 엄격한 연공서열로 상징되는 일본 샐러리맨이 ‘영웅’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한때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인 이들이 일본 사회의 창의성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 사회에서 샐러리맨들에 대한 시선이 더 이상 곱지 않다며 과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일본 샐러리맨 특유의 노동문화가 21세기 경제성장에 요구되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해치는 위협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샐러리맨 문화는 특히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지난해 불거진 도시바그룹의 회계부정, 최근 미쓰비시자동차의 연비조작에 이르는 일본 기업들의 온갖 비리와 스캔들의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사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조직문화와 빗나간 애사심, 내부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 최악의 사건 사고로 이어지면서 기업을 몰락시킨 것은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는 것이다. 일본 의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경위조사 보고서에서 “사고의 근본 원인은 일본식 문화의 뿌리 깊은 관습과 반사적인 복종, 권위에 대한 도전을 꺼리는 ‘집단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샐러리맨 문화에 대한 불만은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회사가 정년을 보장하던 과거와 달리 계속되는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리게 된 중년 샐러리맨들은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가족들의 시선과 고용불안 속에서 괴로워한다. 젊은 세대는 안정적 생활을 선호하면서도 샐러리맨들에게 요구되는 희생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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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생활을 다룬 만화 ‘샐러리맨 긴타로(한국판 ’멋진 남자 김태랑’)’의 저자 모토미야 히로시는 “샐러리맨들은 노예이며 샐러리맨 문화는 나라를 갉아먹고 있다”며 “이들에게 의무는 많지만 책임은 없으며 내부지향적이고 선 밖으로 삐져나온 사람은 파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이 불거지자 아베 신조 정부는 일본의 노동문화 개혁을 경제 활성화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나섰다. 근로시간 단축,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구조 타파,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 여성인력 고용확대 등으로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 아베 정권의 구상이다.

하지만 샐러리맨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는 이들도 샐러리맨들이다. 일본의 노동개혁은 경제단체와 노동조합들의 강력한 연대와 저항으로 아베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진행이 더디다고 FT는 지적했다. 오사와 마치코 니혼여자대 교수는 전후 기업을 일으킨 모험가 창업주의 시대에서 사내외 위험회피의 달인이라고 할 만한 ‘샐러리맨 최고경영자(CEO)’들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노동시장 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마다 하루오 지바상과대 학장은 “문제는 인식하면서도 끈질긴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샐러리맨들의 엄청난 저항으로 아베 총리는 애초에 하고자 한 일의 10분의1밖에 하지 못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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