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자면 필요한 재원을 미리 마련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왜 걸핏하면 국책은행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지 국민들로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그간 조선·해운업계에 연명용 자금으로 21조원을 퍼주다 보니 부채비율은 811%와 644%까지 치솟았다. 민간기업이라면 경영부실에 휩싸여 벌써 몇 번이나 부도가 났을 것이다.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가 국책은행의 두둑한 배짱과 모럴해저드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데도 금융계 수장은 “산은이 심기일전해 구조조정을 잘 관리하고 있다”며 한사코 감싸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 업체에는 인력감축과 급여삭감 등 강력한 자구책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잇속을 악착같이 챙기는 행태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다른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성과연봉제를 한사코 거부하면서 평균 1억원의 고액 연봉을 꼬박꼬박 받아가고 있다. 올해에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수당을 올려 ‘신의 직장’이라는 명성을 유지하며 감사원에서 방만경영 개선을 촉구해도 노조를 핑계로 거부해온 게 우리 국책은행들의 실상이다. 이런 국책은행장들이 무슨 낯으로 조선업계 근로자들을 만나 고통을 분담하자며 호소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자금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국민이 구조조정에 동의하는 것은 산업계의 썩은 살을 도려내 하루빨리 어려운 경제를 되살려야 하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려면 모두가 납득할 만한 구조조정 실행 플랜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 국책은행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철저한 책임규명은 성공적 구조조정을 위한 첫 단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