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거꾸로 가는 가정의 달, 당신의 가정은 안전하십니까?

어린 자녀와 대화가 단절된 어린이날

곪아터진 감정으로 상처주는 어버이날

제자와 스승간 소통이 없는 학교

가정의달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이 절실





재미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심슨 가족 일원이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앞만 보고 이동하다 다 같이 부딪혀 바닥으로 엎어지는 장면이다. ‘요즘 가정 풍경’이란 이름으로 올라온 이 사진은 네티즌에게 대화 없이 각자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요즘 세태를 풍자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6년 청소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역시 심각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중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는 청소년은 88.3%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다는 비율(95.0%)보다 적었으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주중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청소년은 절반 이상인 56.5%에 달했다. 파편화되고 있는 이 시대의 가정, 과연 가정이란 이름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어린이와 대화 없는 ‘어린이날’

지난 5일 어린이날 당일,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는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그 동안 별렀던 장난감을 사는 어린이 손님들로 붐볐다. 이날 만큼은 아동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팔려 나간다. 원했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기쁨도 잠시,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이는 얼마나 될까.

어린이집 보육교사 박다은(29)씨는 “요즘 아이들과 논다고 키즈카페를 찾는 부모가 많긴 한데 어른들끼리 모여 얘기하지 아이들은 각자 논다”며 “일단 집에 없는 물건이 많으니 재미는 있는데 계속 떠오르는 호기심을 풀어줄 상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생인 최미희(14) 양은 “어릴 적부터 최근까지 어린이날마다 선물을 받아도 갖고 싶어 했던 걸 갖게 된 것 뿐이지 그 이상의 느낌은 없다”며 “부모님이 맞벌이라 어린이날에 맞춰 선물을 사 주시곤 이내 각자 주무시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셔서 특별히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어린이날을 맞아 실시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22개 중 꼴찌를 기록했다. 이들 5명 중 1명 꼴로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으며, 전체의 5%는 세 차례 이상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탁을 받아 전국 초중고 학부모 1,5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부모 자녀교육 및 학교 참여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자녀와 부모와 하루 대화 시간은 25분 이하가 26.5%, 26분~50분 이하가 42.7%, 51분~100분 미만이 20.2%로 집계됐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2명 중 1명은 하루 평균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30분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곪아버린 감정으로 상처 주는 어버이날


최근 영등포에서 아들이 부모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발생한 가정 폭력 사건이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분노조절 장애증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던 부모를 향해 잠재됐던 감정이 이후 폭언과 위협적 행동으로 드러난 경우다. 사건을 지켜본 김진호(31) 경사는 “해묵은 감정을 풀자며 가족끼리 술을 마시다가 폭력으로 발전했다”면서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쌓였던 오해로 인해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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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불화는 없지만 가족간 대화가 절대적으로 적은 가정도 많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꼭 챙겨 받는다는 김경숙(59) 씨는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과 현금을 주는 걸 좋아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마음이 담긴 편지나 카드를 받고 싶다”며 “과거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많았지만 꽃 한 송이 만으로도 마음으로 전달됐는데 물질적인 게 커진 요즘은 더욱 삭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벼룩시장 구인구직이 가정의 달을 맞아 직장인 517명을 대상으로 가족간 대화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소 가족간 대화가 잘 이뤄진다’는 응답자는 33%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응답자는 ‘보통이다’(47.9%)고 대답했으며, ‘가족간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19.1%였다.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상대로는 응답자의 37.2%가 부모님을 꼽았다.

#스승의날..제자와 ‘소통’할 수 없는 학교

교단에서 보이는 현상도 비슷하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박소영(30)씨는 “요즘 교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노동으로 보는 선생님들이 많다. 아이들과 대화할 생각은커녕 마음에 무관심하고 사무적인 일 처리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과 마음을 다해 관계를 맺다가 혹여 잘못될 경우 교사한테 책임을 지우는 경우가 적지 않아 소극적으로 최소한의 관계를 맺는 경향이 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CCTV 설치, 스쿨 폴리스, 나머지 배움터 등 안전이나 학습을 위한 학교 환경은 나아지고 있지만 학생과 교사간에 형식적인 관계는 굳어지는 형편이다. 박씨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집에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다”며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성적만 나오면 된다고 보는 학부모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가까운 사람을 챙겨야 하는 기념일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 5월, 하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해지고, 때론 서로를 원망하거나 책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최근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살인 등 극단적인 폭력의 경우 대부분 사소한 분노를 참지 못해 발생한다”며 “분노를 조절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는 보통 어릴 적부터 가족이나 친구와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데, 요즘처럼 파편화된 가정에서는 올바른 사회화 교육이 이뤄지지 어렵다”고 진단했다.

범죄심리전문가 표창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의의 적들’에서 “우리 사회에 점점 생각하기 어려운 범죄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문제들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학습된 무기력’이 팽배하기 때문”이라며 “우선주의에 빠져 내 인생만 바라보기도 벅찬 사회 모습은 하루 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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