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잖아도 노동개혁 법안이나 경제활성화 법안 하나하나에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그렇고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서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이들 법안이다. 17일자 사설에서 그랬듯이 지금도 관련 법안 통과를 국회의 입법권 보호를 넘어 국민이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로 파악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긴급재정명령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1993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때도 발동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같은 달 21일 ‘노동개혁법 위한 긴급재정명령 두려워할 이유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다시 내보내야 했다. 이 역시 정치권과 언론이 여전히 노동개혁법과 관련한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에 대해 차가운 반응으로 일관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자신이 내놓았던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 검토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워낙 어려운 상황이라 이것저것 검토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한 거다. 언론에서 너무 확대해서 썼다”며 갑자기 발을 빼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침내 노동개혁 법안에 긴급명령권이 발동된 것이다. 물론 한국이 아니라 우리 정치상황과 달리 좌파 사회당이 집권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10일 노동개혁 법안을 하원 표결을 거치지 않고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직권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이날 비상 각료회의를 열어 “헌법 제49조 3항(대통령 긴급명령권)에 근거해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노동법 개정안이 현실적으로 의회의 벽을 넘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노동법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따라 정규직 해고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주당 35시간 이내로 돼 있는 법정 근로시간을 최대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게 됐다. 지나치게 짧은 노동시간, 과도한 정규직 보호조치 등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거나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만드는 경직된 노동시장에 대한 외과적 수술 없이는 청년 일자리는 물론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함으로 정부가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여전히 말잔치뿐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지금 다수당이 아니다. 다수당일 때도 있으나 마나였는데 소수당이니 오죽하겠나. 현 정세하에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 박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잔여 임기에 기업인들을 동반해 해외순방이나 다니는 것이다.
새누리당도 다를 바가 없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취임 후 지금껏 ‘협치(協治)’나 외치고, 상대 당의 상징 색깔을 띤 넥타이나 매고 다니고, 국회 의석 섞어 앉기나 하자면서 세월을 즐기고 있다. 노동개혁이든 경제활성화법이든 기업 구조조정이든 뭐 하나 언급이 없다. 정부 여당은 지금껏 노동개혁법 무산을 놓고 야당 탓만 해왔다. 하지만 현 정부에 없는 것은 야당의 동의가 아니라 용기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