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녀 프로골프 투어는 플레이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기로 이름났다. 유명 선수든 꼴찌든 슬로 플레이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제재가 가해진다.
지난 15일 신지애의 우승으로 끝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호켄노마도구치 레이디스 대회 최종일에 있었던 뒷얘기 하나. 이날 마지막으로 출발한 챔피언 조는 1988년생 동갑내기 한국 선수인 신지애·이보미·김하늘로 짜였다. 이보미가 선두, 김하늘이 2위, 신지애가 3위에 자리한 데 따른 것이다. 김하늘은 단독 선두였던 9번홀에서 티샷이 크게 오른쪽으로 휘어져 아웃오브바운즈(OB) 구역으로 날아갔다. 이 홀에서 더블보기를 적어낸 김하늘은 결국 신지애에 꼭 2타가 모자라 이보미와 함께 공동 2위로 마감했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이날 신지애·이보미·김하늘 조는 8번홀을 마친 뒤 슬로 플레이 경고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보통 앞 조와 한 홀 이상 벌어지면 주의를 주고 이후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한 샷에 60초를 넘어가면 2벌타를 부과한다. 경기위원의 지시로 9번홀을 향해 뛰다시피 이동했고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스윙 타이밍이 빨라졌다”는 김하늘이 이 조(組)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냉엄한 일본의 사례를 든 것은 국내 투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최근 2년 동안 경기 진행이 빨라진 것으로 평가받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올 들어 다시 경기 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이다. 신임 경기위원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강력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상황에 따른 코스 난이도 조정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회 수와 상금 규모가 커져 선수들이 신중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선수들의 슬로 플레이에 있다.
경기 시간 단축은 팬들의 인기로 생존하는 모든 현대 프로스포츠가 노력하는 최우선 과제다. 야구나 축구는 거의 매년 ‘촉진 룰’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골프는 코스 내 선수들의 플레이가 톱니바퀴처럼 이뤄지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심판의 감독 없이 진행되는 스포츠다. 느린 플레이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또는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적절한 플레이 속도 유지는 팬들에 대한 서비스이기에 앞서 그 자체로 의무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다. 골프 규칙은 제1장 ‘에티켓’에서 “플레이어는 약간 빠른 속도로 플레이해야 한다…플레이어는 플레이 순서가 왔을 때 바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도 늑장 플레이에 대해서는 에누리 없이 벌타를 주는 유럽 프로골프 투어의 존 패러모어(잉글랜드) 경기위원장이 몇 년 전 방한했을 때 한 말은 곱씹을 만하다. “모든 선수는 공평한 경기 시간과 공평한 우승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심지어 뒤 조가 쫓아오지 않는 상황이라도 제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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