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궁궐, 과거서 미래의 공간으로

나선화 문화재청장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다양한 기록을 사용한다. “사진을 통해 일상을 영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글·영상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재창조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새김한다.

현대의 공간은 존재 자체가 기록이다. 무수한 시간을 거치며 각 시대의 상징물이 퇴적된 역사의 지층(地層)이기 때문이다. 서울 곳곳에는 시간의 흔적이 첩첩이 쌓여 있고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철학과 미학·감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 정신문화가 오늘날의 가치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서울 사대문 안은 자체가 역사의 보물창고다. 첨단 고층 빌딩 사이의 흥인지문·숭례문, 그리고 4대 궁궐과 종묘는 그 자체가 조선 왕조 500년의 숨결을 간직한 장소다. 하지만 조선 왕조의 혼이 담겨 있는 동시에 당대 최고의 기술과 고품격 문화가 집대성된 이곳을 사람들은 일상에서 무심하게 지나가며 단순히 관광지로만 여기고 있다.


과거의 것을 보존만 하는 공간은 유물 수장고일 뿐이다. 조선 왕조의 이념·미학을 우리의 문화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궁궐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열흘 동안 4대 궁과 종묘에서 해마다 열리는 궁중문화축전은 의미가 크다. 조선 시대 궁중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그 시대 궁궐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축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대한 도심에서 624년 전 건립돼 500년 넘게 지속된 한 왕조의 삶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궁궐의 고품격 문화유산이 오늘날 사람들의 새로운 경험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과거에 존재한 조선 왕조의 역사가 궁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롭게 문화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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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래 유산이 화두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유산으로 만들어 미래세대에 보물로 전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현시대에 가치 있는 건물은 건물대로, 음식은 음식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한국문화의 자원으로 보존될 것이다. 결국 유산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주체가 우리가 되고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는 역할과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역사를 화석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현재로 재해석할 시점이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기억의 반대는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라고 했다. 기억은 과거를 여행하는 과정이고 상상을 통해 미래로 여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과거를 기억하려는 무수한 노력이 미래 세대에서도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문화유산으로 더욱 꽃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나선화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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