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혁신을 내걸고 의욕적으로 출범한 새누리당 ‘정진석 체제’가 난파 위기를 맞게 됐다. 전국위원회 불발로 정진석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의 공식 출범이 무산돼서다. 정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는 4·13 총선 참패로 일괄 사퇴한 최고위원회를 대신해 차기 전당대회 준비 및 일반 당무를 담당하기로 했지만 친박계의 반발로 전국위원회 자체가 열리지 못하면서 출범 2주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친박계의 지원에 힘입어 원내대표 경선에서 대승을 거뒀던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의 ‘보이콧’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비대위를 출범시키지 못하면서 충격과 후유증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당 관계자는 “비대위원장 선출이 무산됨에 따라 사실상 당 임시지도부는 와해된 셈”이라며 “공식적인 논의·의결 기구가 없어졌기 때문에 정당 기능은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도부 공백 이어져 당 정상화 일정이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로서는 몸값을 올릴 호기를 놓쳤다. 총선 패배에 따른 혼란 수습을 위해 고심 끝에 인선한 비대위 위원과 김용태 혁신위원장 카드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면서 자신의 힘으로 난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은 완전히 헝클어졌다.
지지기반도 잃었다. 19대 국회 공백으로 당내 지지기반이 없던 정 원내대표가 당선된 것은 친박들의 지지세가 결집해서였는데 이번 비대위원 인선안 파동으로 친박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친박 재선 의원은 “지지기반이 없는 정 원내대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준 게 친박인데 비대위원이나 혁신위원장에 친박들이 극도로 경계하는 인물로 채운 게 근본적인 패착”이라고 말했다.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 인선안을 전부 백지화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만큼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김정훈 전 정책위의장은 “지금 정진석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도 안 맡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해 비대위원장 사퇴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일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비대위원장이나 혁신위원장 모두 외부에서 혁신인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친박인 함진규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당내 인사들이 비대위도 맡고 혁신위도 맡으면 국민들이 보기에 혁신으로 비쳐지겠느냐”며 “경험과 경륜을 갖추고 당을 생각하는 관록 있는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당이 진짜 변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대 원구성 협상을 놓고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내 수석대표가 있지만 당이 정상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주도권을 잃게 되고 이에 따른 20대 국회 개원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