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기업 재무제표에 ‘사내유보금’ 항목은 없다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린 조선업계 노조들은 사내유보금을 헐어 나눠 갖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무거운 세금을 매겨 사회로 강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마치 사내유보금이 쌈짓돈이라도 되는 양 너도나도 먼저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모양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7일 사내유보가 많은 기업일수록 투자나 고용에 적극 나서는 등 경제 기여도가 높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실제 상장사 중 사내유보가 많은 상위 10개 기업의 지난해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54.1% 늘어난 반면 하위 10개사는 45.4%나 줄어들었다. 사내유보가 중장기적으로 투자 및 고용의 든든한 재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유보금 10%만 풀면 청년취업난이 해소된다는 구호가 난무하는 것은 기업 재무제표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적 계산이 깔렸기 때문이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재무제표에는 ‘사내유보금’이라는 항목이 없다. 생산설비나 연구개발(R&D) 등에 투자된 회계학상의 개념일 뿐이다. 이른바 ‘쌓아둔 현금’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전체 유보금의 15~18%에 불과해 비상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중공업의 유보금이 3조원에 달하지만 단기 운영자금이 부족해 은행에 손을 벌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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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학계의 제언도 주목된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줄이고 구조조정의 걸림돌을 없애자면 차제에 투자 준비금이나 미배당준비액 처럼 정확한 의미를 담아내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개탄스러운 것은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된 자세다. 기업이야말로 투자주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빈약한 금고라도 열어 일단 쓰고 보자는 근시안적 사고가 판치는 한 사회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라도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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