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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전파 글로벌 현장을 가다] '언어굴기' 나선 中, 중국어 보급에 年 3,700억 쏟아붓는데 한국은?

<하> 세계는 언어전쟁 중

"문화영토 넓히자" 英 ·獨·佛 등 자국어 보급 사활 건 경쟁

한국 '세종학당'은 예산 130억 그쳐...체계적 전략도 부족

독일 본대학교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국어 짱’ ‘맥주 주세요’ ‘독일 감자 최고’ 등 자필 한국어 단어·문장 등이 쓰인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독일 본대학교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국어 짱’ ‘맥주 주세요’ ‘독일 감자 최고’ 등 자필 한국어 단어·문장 등이 쓰인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만약 세계의 문자를 하나로 통합한다면 한글이 돼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명저 ‘총, 균, 쇠’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문화인류학자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서울포럼’ 연단에서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체계다. 60년 전에 가난했던 한국이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로 성장하는 데는 한글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한글과 한국어는 글로벌 경쟁에서 선두권에 도달하지 못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독일·영국·일본 등이 벌이는 ‘글로벌 언어전쟁’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007년에야 뒤늦게 ‘세종학당’을 무기로 이 전쟁에 본격 참여했다. 한국어 전파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범정부적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공자학원’으로 영어의 세계 지배에 도전장=중국 베이징 더성먼와이가(街)에 위치한 6층 규모의 연분홍색 공자학원총부(孔子學院總部) 건물은 전 세계 중국어 학습 관계자에게 익숙하다. 전 세계 1,500곳의 공자학원을 운영, 관리하며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헤드쿼터가 바로 공자학원총부이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이 찾은 이곳은 국립중앙도서관 건물에서 ‘단칸방’ 생활을 하는 세종학당재단의 초라한 모습과 겹쳐져 그랬는지 대단한 위용이 느껴졌다.

중국어가 영어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어를 ‘국제어’로 만들기 위한 무기는 ‘공자학원’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공자학원을 세계에 전파하는 데 애쓰고 있다. 공자학원총부가 매년 발행하는 ‘공자학원연도발전보고’에 따르면 공자학원은 2015년 말 현재 전 세계 135개국에 1,500곳이 설치돼 있다. 공자학원총부가 지난해 사용한 예산은 3억1,085만달러(약 3,700억원)였다.

공자학원은 중국의 주요 정부부처가 총망라된 범정부기구다. 공자학원의 최고 상위관리기구는 교육부 산하 국가한어(중국어)국제보급지도위원회(國家漢語國際推廣領導小組)로 여기에는 교육부를 포함해 재정부·대외경제무역부·문화부·국가방송총국·신문출판총국·국가언어문자사업위원회·국가발전기획위원회 등 12개 부서가 참여한다. 위원회 사무국은 국가한판(國家漢辦·정식 명칭은 國家漢語國際推廣領導小組辦公室)으로 이곳에서 공자학원총부를 지휘한다.

이처럼 탄탄하게 짜인 ‘중국어 전파’ 일관 시스템으로 처음부터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함께 교육하는 것이 쉽다. 또한 공자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학습자에게 학력과 학위 인증, 장학금 제공도 가능하다. 외국인의 중국어능력인증시험인 ‘한어수평고시(漢語水平考試·HSK)’를 공자학원총부에서 주관하는 것도 공자학원 학습자에게는 이점이다.


공자학원 설치는 2004년에 시작됐다. 세계 1호 공자학원은 서울에 세워졌다. 먀오춘메이 한국외국어대 공자학원장은 “공자학원은 중국과 각국의 우호관계 증진에 노력하고 있다”며 “중국어와 함께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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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언어전쟁 중=자국어 전파에 공세적인 곳은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지구촌 언어세계를 제패한 ‘영어’ 사용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또한 자국어 보급을 위해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다. 문화영토 확장과 함께 상품수출로 이어지는 실질적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알리앙스프랑세즈,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 등이 영국 브리티시카운슬과 세력을 다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브리티시카운슬은 2,020억원의 예산으로 116개국 242곳에 설치돼 있다. 이중 한국에도 3곳이 있다. 브리티시카운슬은 각국에서 어학센터 운영, 영국유학 안내, 영어능력평가시험인 ‘IELTS’ 주관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교류 프로그램 제공 서비스를 한다. 또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는 2,860억원의 예산으로 94개국 160곳(한국에 4곳)에 각각 설치돼 있다. 영어의 오랜 경쟁자로서 프랑스어 전파를 위해 알리앙스프랑세즈는 420억원의 예산으로 136개국 919곳(한국은 8곳)을 운영하고 있다. 알리앙스프랑세즈의 경우 재정자립을 위해 수강료 및 교재판매로 전체 예산의 95%을 자체 조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한국어 보급상황은 열악하다. 세종학당은 2015년 말 기준 54개국 138곳에 설치돼 있으며 지난해 예산은 131억원에 불과했다. 올해 예산은 162억원. 이 정도로는 한류 확산으로 급증하는 한국어 및 한국 문화 수요에 맞추기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가 중국에 설치한 세종학당은 28곳인 반면 중국 공자학원은 한국에 33곳이 있다. 한재혁 주중 한국문화원장은 “중국이 자국 문화를 보급하려는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투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공자학원총부 전경중국 베이징의 공자학원총부 전경


■특별취재팀:중국 베이징·항저우=최수문기자(팀장), 영국 런던·독일 본=연승기자, 베트남 하노이·호찌민=박성규기자 chsm@sedaily.com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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