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송주희 기자의 About Stage]관객에 말을 거는 연극

내한공연 獨 연극 '민중의 적'

배우·관객들 토론의 장 변신

연극·현실 오가는 색다른 경험

'몰입방해'로 메시지 전달 효과

연극 ‘민중의 적’에서 주인공 스토크만 박사가 마을 온천수 오염을 폭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연설 후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스토크만의 주장과 극 속 갈등에 대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사진=LG아트센터연극 ‘민중의 적’에서 주인공 스토크만 박사가 마을 온천수 오염을 폭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연설 후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스토크만의 주장과 극 속 갈등에 대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사진=LG아트센터


“극장에 가서 말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는 여러분의 선입견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연극 ‘관객모독’의 배우들은 쉼 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스토리도 없고, 배우들이 랩 하듯 내던지는 대사는 (발음은 또렷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연극을 ‘우리네 삶을 그럴듯하게 묘사한 몰입의 대상’이라 생각해 온 관객에겐 낯설고 어쩌면 불편한 작품일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는 1966년 이 같은 관객의 타성을 깨부수고 그들을 배우와 함께 의사소통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무대 위 환상을 제거한 희곡 관객모독을 썼다.

관객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을 ‘생소화 효과’라고 한다. 브레히트가 주창한 이 방식은 관객이 드라마나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연기하던 배우가 갑자기 관객에게 말을 거는가 하면 때론 보는 이가 불편하리만큼 부자연스러운 화법과 동작을 선보인다. 생소화 효과가 의도하는 바는 ‘몰입보다 더 실감 나는 현실 자각’에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현실에 한 번 더 의혹을 품게 만들며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극 ‘민중의 적’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스토크만 박사의 연설 장면 후 ‘스토크만의 의견에 동의하면 손을 들라’는 주문과 함께 배우들과 극 중 갈등에 대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토론의 내용은 점점 극을 벗어나 2016년 대한민국에 대한 쓴소리로 이어진다./사진=LG아트센터연극 ‘민중의 적’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스토크만 박사의 연설 장면 후 ‘스토크만의 의견에 동의하면 손을 들라’는 주문과 함께 배우들과 극 중 갈등에 대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토론의 내용은 점점 극을 벗어나 2016년 대한민국에 대한 쓴소리로 이어진다./사진=LG아트센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5월 26~28일 내한 공연한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의 연극 ‘민중의 적’도 관객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색다른 경험을 안겨줬다. 주인공 스토크만 박사는 온천관광특구 개발을 앞둔 자신의 마을 온천수가 공장 폐수로 오염됐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언론에 폭로하려 하지만, 시의원인 형은 마을과 자신의 경제·정치적 타격을 우려해 이를 저지한다. 기사화를 약속했던 언론마저 돌아선 상황. 스토크만이 대중에게 폭로 연설을 하려는 순간, 객석에 환한 불이 켜지고, 극장은 열띤 토론의 장이 된다. “그쪽은 온천이 문제지만 이곳(한국)은 ‘4대 강’으로 인한 수질오염 때문에 나라 전체가 엉망진창이다.”, “정부와 기업, 언론이 이익을 위해 눈감아 벌어진 게 지금의 옥시 사태다.” 극 중 갈등을 넘어서는 2016년 대한민국을 향한 쓴소리가 객석에서 터져 나오고 공감의 환호가 뒤따른다. 독일에서 온 배우들은 되려 묻는다. “한국 정부는 (극 중의) 우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문제를 안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인가.”


스토크만은 연설 중 “진실의 적은 미디어와 정치가 만들어낸 바보들, 머저리 같은 대중”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150분의 연극에서 말없이 앉아 ‘그럴듯한 현실 이야기’를 즐기고 나온 관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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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독특한 체험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날것 그대로의 순간을 체험하며 익숙했던 현실을 색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극장에 가서는 말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 생소한 경험에 도전해보시라.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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