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합의문 내용만 보고 안심하긴 이르다. 유 경제부총리는 거시경제정책과 관련해 ‘환율이 시장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으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시장 안정 노력을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고 했다. ‘합의’가 아닌 ‘주장’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양국의 이견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루 장관은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미 재무부의 수장이자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요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 재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은행을 방문한 것도 불편하다. 외환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은을 미국 재무 총책임자가 찾아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압박이다.
그러잖아도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부쩍 높이고 있는 미국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심지어 주한미국대사까지 나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합의문과 상관없이 루 장관의 방한 자체가 우리 정부에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미국은 일본과 함께 중국 철강 제품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북한에 제재 품목을 수출했다는 혐의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조사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앞두고 루 장관이 한국을 찾은 것은 대중 견제에 동참하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루 장관의 방한에 맞춰 공교롭게도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갑작스레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4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보기엔 타이밍이 절묘하다. 우리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한국을 향해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새 판을 짜도록 요구하는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