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통상압력·美中갈등 속에 만난 한미 재무장관

한미 재무장관회의가 9년 만에 한국 땅에서 열렸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3일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갖고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의 정책 공조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거시경제 상황 및 정책 방향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양국이 주요 현안에 이견이 전혀 없고 예상했던 미국의 통상 압력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합의문 내용만 보고 안심하긴 이르다. 유 경제부총리는 거시경제정책과 관련해 ‘환율이 시장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으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시장 안정 노력을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고 했다. ‘합의’가 아닌 ‘주장’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양국의 이견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루 장관은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미 재무부의 수장이자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요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 재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은행을 방문한 것도 불편하다. 외환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은을 미국 재무 총책임자가 찾아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압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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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잖아도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부쩍 높이고 있는 미국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심지어 주한미국대사까지 나서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합의문과 상관없이 루 장관의 방한 자체가 우리 정부에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미국은 일본과 함께 중국 철강 제품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북한에 제재 품목을 수출했다는 혐의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조사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앞두고 루 장관이 한국을 찾은 것은 대중 견제에 동참하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루 장관의 방한에 맞춰 공교롭게도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갑작스레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4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보기엔 타이밍이 절묘하다. 우리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한국을 향해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새 판을 짜도록 요구하는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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