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기업-회계법인 '검은 공생'] 회계시장 빅4 과점·일감 과당경쟁에…부실감사 논란 되풀이

낮은 보수·분식회계 솜방망이 처벌로 외부감사 질 저하

한국 '회계 투명성 평가' 72위…짐바브웨·부탄보다 낮아

시장 양극화 갈수록 심화…중견·중소형사 육성도 시급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회계·감사 투명성 평가 순위에서 한국은 140개국 중 72위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경제규모가 한국의 90분의1 수준인 짐바브웨가 40위에 올랐고 아시아지역 최빈국인 부탄(60위)에도 뒤처지는 결과였다. WEF가 설문조사를 통해 매기는 순위여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지만 한국의 회계·감사 수준이 바닥권이라는 데는 기업과 회계법인, 금융 당국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해운·조선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달아 불거지고 있는 분식회계·부실감사 논란은 회계법인이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분식회계·부실감사 논란이 터질 때마다 먼저 거론되는 것이 감사보수 문제다. 이는 돈을 내는 기업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게 되는 외부감사 시장만의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은 이 같은 구조를 악용해 감사보수를 최대한 깎는 경향이 있다. 회계법인은 일감을 주는 기업의 ‘갑질’에 속수무책이다. 경기 둔화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더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한정된 일감을 따내야 하므로 알아서 낮은 감사보수를 제시한다. 기업의 사업 영역이 늘어나고 회계시스템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환경에서 보수가 낮아지니 감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업은 회계감사를 귀찮은 통과의례쯤으로 여기는데 보수는 감사의견의 수위를 조절하는 수단이 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기금을 모아 회계법인에 보수를 주거나 지급 하한선을 두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자유경쟁 시장질서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실현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결국 감사보수를 내는 기업의 태도 변화도 중요하지만 회계 업계의 자정노력이 가장 절실하다는 게 회계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손성규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감사보수 하락 문제는 시장에서 뛰고 있는 회계법인들이 직접 풀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공인회계사회나 대형 회계법인들이 중심을 잡아주는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삼일PwC·딜로이트안진·삼정KPMG·EY한영 등 해외 유명 회계·컨설팅 업체와 손잡은 이른바 ‘빅4’ 회계법인들이 외부감사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회계·감사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2014 사업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기준으로 빅4 회계법인은 외부감사 시장의 56.9%를 점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150여개 법인이 43.1%를 나눠 먹는 구조다. 또한 회계법인에 속한 회계사 중 54.3%는 빅4 회계법인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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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시장 자원(돈·인력)의 절반 이상을 빅4 회계법인이 가져가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같은 대형 이슈가 터졌을 때 이들을 대체할 만한 업체를 찾기가 어렵다. 실제 삼일PwC는 지난 3월 현대상선 감사보고서에서 ‘적정’ 의견을 낸 뒤 부실감사 의혹을 받는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정KPMG 역시 STX조선해양을 부실감사했다는 혐의로 제재를 받은 상황에서 같은 업종인 삼성중공업의 실사를 맡았다. 사실상 ‘돌려막기’나 다름없다.

다른 중견·중소 회계법인은 규모와 능력 면에서 빅4 회계법인과 큰 격차를 보인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것을 계기로 최근 몇 년 동안 빅4 회계법인의 과점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추세”라며 “시장 과점은 회계·감사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인 만큼 기존 대형사를 대체할 수 있는 중견·중소 회계법인을 여럿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처벌기준 외에도 독립성 강화방안과 보수 체계 및 업무영역을 포함해 외감법 전면 수정론이 부상하고 있다. 회계 업계를 관리·감독하는 금융 당국의 제도 개선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 대표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하려 했으나 ‘과잉 규제’라는 이유로 3월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철회 권고를 받았다. 현재는 분식회계·부실감사가 발견되면 담당 임원(파트너)과 회계사만 징계 대상에 올라 처벌 수위가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일단 규제 근거를 보완해 올해 하반기 중 외감법 개정안 제출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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