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클린턴 대선후보 확정]퍼스트레이디 넘어 퀸 꿈꾸는 여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그가 2003년 펴낸 자서전의 제목 ‘살아있는 역사’처럼 미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클린턴은 1947년 미 일리노이주 최대 도시인 시카고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인 공화당원인 아버지와 민주당 지지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공화당에 큰 호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민주당으로 지지 정당을 굳힌 것은 미국의 명문여대 웨슬리칼리지에 진학한 뒤부터다. 1973년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그는 아동보호기금에서 공적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4년에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법제사법위원회 조사위원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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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로스쿨 동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결혼을 한 건 1975년 일이다. 이 결혼을 계기로 미국 민주당에서 가장 빛나는 가문인 ‘클린턴가(家)’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빌 클린턴은 1978년 아칸소 주지사로 당선됐으며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직에 올랐다. 더불어 힐러리 클린턴도 백악관에 입성해 8년간 영부인의 삶을 살게 됐다.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지면서 부부는 한때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위기를 넘기며 국민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영부인이 됐다.

그가 남편을 넘어 스스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2000년부터다. 뉴욕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은 8년간 의회에서 일했으며 2008년에는 직접 대선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비록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4년간 국무장관으로 일하며 뛰어난 업무 역량을 인정받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민주당의 유일무이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될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인기는 2016년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고액 강연료 파문, 월가와의 친밀한 관계 등으로 ‘특권층’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데다 국무장관 재직 당시 보안 규정을 무시했다는 ‘e메일 스캔들’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인 힐러리 클린턴이 이번에는 조연을 넘어 주연으로서 화려한 비상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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