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상장 후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한 바이오 벤처기업 크리스탈(083790)지노믹스가 신약 기술 개발로 대박을 터뜨렸다. 적자를 감수해가며 신약 개발에 매진한 결과 미국의 바이오 기업에 신약 기술을 3,530억원에 수출하는 길을 연 것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크리스탈지노믹스는 나스닥 상장사이자 미국 바이오 벤처사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에 급성백혈병 신약인 ‘CG 026806’ 기술을 3,530억원에 수출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신약 기술 수출로는 한미약품(6조원)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계약 방식은 초기 계약금에다 임상 성공 시 나머지 계약금(마일스톤 방식)을 받는 조건이다. 신약 기술이 추후에 상업화에 성공한다면 별도 판매 로열티를 받는 조건이어서 성장 가능성은 더 크다. 또 한국과 중국 시장에 대한 판권은 크리스탈지노믹스가 보유하기로 했다.
정인철 크리스탈지노믹스 부사장은 “앱토즈는 백혈병 치료에 전문화된 미국 바이오 회사로서 그간 크리스탈지노믹스와 오랜 시간 연구를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항암제·슈퍼박테리아 등 신약과 파이프라인 연구를 지속해 올해 수익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계약금은 현재 자본금(736억원)의 29배, 지난해 매출액(98억원)의 36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회사는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현재 몸집보다 30여배 큰 기술수출로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개인과 기관, 외인이 모두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날 거래량만 평소의 20배 수준에 이르는 500만주에 달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자체 신약 개발에 매진해온 회사의 독특한 경영 방식과 투자자의 지속적인 신뢰, 상장특례 등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창업자 조중명 대표는 지난 2000년까지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장을 지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설립했다. 당시 김성호 UC버클리대 교수 및 핵심 연구원 10여명은 단백질 구조 분석을 통한 신약개발 전문 바이오 기업을 설립했다. 뛰어난 연구원 덕택에 기술력은 금방 인정받았다. 올 초 현재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임직원은 70여명으로 이 중 77%가 연구직이다. 조 대표는 회사의 롤모델로 신약 개발에 매진해온 미국의 길리어드를 꼽고 있다. 10여년간 적자를 보던 길리어드는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개발에 성공한 뒤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우뚝 선 회사다. 그는 2013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쯤이면 퀀텀 점프를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제도의 뒷받침도 있었다. 코스닥 상장사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처음에는 일본서 상장을 시도했다. 자금융통을 위해 2004년 회사는 노무라증권과 함께 일본 벤처 주식시장인 마더스에 상장을 추진했다. 당시만 해도 코스닥은 엄격한 상장심사제도가 있어 만성 적자를 기록 중인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상장이 불가능했다.
이 같은 기술기업의 일본 상장 시도는 2005년 코스닥시장본부가 기술특례제도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2006년 크리스탈지노믹스는 기술특례기업 1호로 상장했다. 창업 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지만 코스닥 특례상장제도 덕분에 상장은 유지됐다.
성과는 느리게 나타났다. 기술력을 알아본 한미약품은 2008년 크리스탈지노믹스에 156억원을 출자해 2대 주주로 올라서기도 했다. 지분 참여 목적은 신약 개발의 전략적 제휴였다.
기술수출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올해 1월 터키의 제약사 티알팜과 145억원 규모의 관절염 치료제(아셀렉스) 기술수출을 이뤄냈다.
김종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전형적인 연구 중심 기업으로 그간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가능성 위주로 투자 유치를 받았다”며 “올해는 그간 개발해온 신약과 파이프라인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