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수뇌부를 정조준한 검찰 수사로 롯데 계열사의 유동성 흐름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롯데는 지난 1948년 창립 이후 공모채 발행을 꺼릴 정도로 ‘현금부자’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2004년 신동빈 롯데 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본부장에 취임해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룹의 ‘보수경영’ 기조가 ‘공격경영’으로 확 달라졌다. 2004년 이후 롯데그룹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사들인 회사만 36곳에 이른다. 금액으로 치면 14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매년 1조원이 넘는 돈을 M&A에 써온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당장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일부 계열사는 회사채 및 기업어음 발행에도 난관이 예상된다”며 “롯데그룹에 현금이 많다고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차입금도 같이 불어나는 구조여서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재무구조가 부실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호텔롯데 불어나는 차입금=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재무구조를 살펴보면 공격적 경영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1,190억원이었던 호텔롯데의 단기차입금(유동차입금)은 지난해 말 1조4,629억원으로 12배 넘게 불었다.
이는 이 회사가 지난해 외부자금을 조달해 대대적인 확장에 나서며 몸집을 불린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KT와 재무적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KT렌탈 지분 100%를 1조2,000억원에 인수했으며 이어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 호텔인 ‘더뉴욕팰리스호텔’도 8,92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차입구조가 빠른 속도로 단기화한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 회사의 기업어음 잔액은 지난해 1조5,000억원을 돌파한 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기업을 제외한 민간기업 중 최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롯데가 끌어들인 돈(차입금)을 보면 단기자금시장에서 조달한 돈이 대부분”이라며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향후 기업신용평가 등의 과정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자금조달비용이 늘어 재무구조가 부실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다.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가 무기한 연기된 것도 자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 회사는 “상장 후 마련된 자금을 단기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올 1·4분기 현재 호텔롯데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338억원으로 13조원이 넘는 자산 규모에 비하면 빈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금경색에 투자 급제동=검찰 수사가 롯데 계열사 경영에 이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검찰이 본사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개시한 10일 밤 긴급자료를 내고 “그룹 상황이 좋지 않아 그동안 추진하던 미국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이에 앞서 7일 석유화학 기초원료를 생산하는 액시올사 인수를 선언하면서 세계 12위권 화학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으나 검찰 수사로 물거품이 됐다.
롯데가 사흘 만에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한 것은 선제적 방화벽을 쌓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삼성SDI 케미컬 부문과 삼성정밀화학을 각각 2조5,850억원, 4,650억원에 인수하며 3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여기에 오는 2018년 미국 에탄분해설비(ECC) 및 모노에틸렌글리콜(MEG) 프로젝트에 2조9,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어서 예상치 못한 중대 변수가 발생할 경우 자칫 유동성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롯데케미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되 등급전망은 ‘부정적’으로 낮췄다.
석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롯데케미칼의 주력인 에틸렌계 제품의 시황이 좋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개선됐지만 액시올사 인수 무산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실패해 사업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